우화집

나비 꿈 (1) - 우주

펜보이 2007. 6. 25. 11:53
 

 

 하늘 宇宙

 

  아주 먼 옛날에 한 노인이 있었다. 그 노인은 자신이 언제부터 있었는지 알지 못했다. 노인은 잠도 자지 않고 먹지도 않고 한 곳에 가만히 앉아만 있었다. 노인 주변에는 아무 것도 없었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고요하고 또 고요함이 있을 뿐이었다. 노인의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아니, 노인이 살아 있는 것인지조차 알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 노인은 꿈을 꾸었다. 자신이 아주 먼 곳 어디인가로 걸어가는 꿈이었다. 물론 이제껏 한 번도 일어나 본 일도 없고 걸어 본 일도 없었다. 노인은 꿈을 꿈으로써 비로소 자신이 살아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또 자신이 어디에 있는가를 알 수 있었다. 넓고도 넓고 높고도 높고 깊고도 깊은 어떤 공간에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 공간이라는 것도 노인이 꿈을 꿈으로써 비로소 생겨난 것이었다.

  노인은 앉아 있던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 순간 노인 감싸고 있는 공간 또한 움직이기 시작했다. 노인의 눈에 보이지도 않는 어떤 기운이 노인을 에워싸면서 움직이고 있었다. 그 움직임은 노인을 가운데 두고 사방으로 끝없이 퍼져나갔다. 그 기운이 커지자 노인은 거꾸로 아주 작은 존재가 되고 말았다. 그처럼 넓고 높고 깊은 곳은 하늘이 되었다.

  노인은 하늘에서 움직이는 어떤 형태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자 여기저기에서 동그란 모양의 별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별들은 점점 불어나더니 헤아리기도 어려울 만큼 많은 숫자가 되었다. 별들이 얼마나 많던지 메밀꽃밭처럼 보일 정도였다. 그처럼 많은  별들은 무리를 이루고 띠를 이루며 어디론가 움직이고 있었다. 별들은 얼마나 큰지 노인은 점보다도 작아지게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별들의 크기에 가려 노인은 감쪽같이 사라지고 말았다.

  비록 보이지 않게 되었을지라도 노인은 여전히 같은 곳에 같은 모습으로 있었다. 그리고 별들은 노인이 생각하는 대로 움직였다. 노인은 가만히 서서 생각하는 일만으로 모든 것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었다. 노인은 그 커다란 하늘의 주인이 되었다. (신항섭)


<이 글은 출판사 '책 읽는 사람들'에서 "나비 꿈"이란 제목으로 출판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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