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의 길

명작의 길 (27) - 강경규

펜보이 2008. 6. 12. 23:09

 파스텔

 

강경규의 작품


일상적인 시각을 뛰어넘는 극렬한 묘사력과 영성


신항섭(미술평론가)


 

극사실적으로 묘사하는 것은 그 물상의 영혼을 퍼내는 일인지 모른다. 생명체든 아니든 간에 그 물상에 주어진 표피를 파고드는 듯싶은 극렬한 사실적인 묘사는 생동감을 불러들인다. 그림의 생동감은 생물이든 무생물이든 그 영혼을 투영하고 있음을 반증한다. 생동감이 담긴 묘사는 우리의 눈을 감쪽같이 속인다. 그림을 보고 있으면서도 실제로 착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 착각 뒤에는 귀신도 속이는 감쪽같은 솜씨에 대한 감탄이 자리한다. 따라서 감탄하게 만들지 못하는 사실적인 그림은 생동감이 없는데 연유한다.   

강경규의 그림은 감상자로 하여금 연신 감탄을 금치 못하게 한다. 극렬한 묘사력을 통해 발산하는 생동감이 시선을 압도하는 까닭이다. 특히 석류 알갱이 따위의 작은 소재를 그린 정물화는 묘사력의 극점에 올라섰음을 보여준다. 실제를 방불케 하는 치밀한 세부묘사 및 색채를 보면 인간의 정확한 눈과 손의 기술은 그 한계가 어딘가 싶을 정도이다. 이러한 묘사력은 노력의 산물이기 전에 타고난 감각이 아닌가싶다.

 

유채

 

하지만 그의 작품은 단순히 물상을 눈에 보이는 그대로 재현하는데 머물지 않는다. 아무리 묘사력이 출중하더라도 회화적인 아름다움을 구현하지 않으면 단순한 기능으로 전락하고 만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그는 사실적인 묘사력 위에 인위적인 해석을 덧붙임으로써 회화적인 이미지로 바꾸어 놓는다. 사실묘사를 회화적인 이미지로 변환하는 것은 생각처럼 간단한 일이 아니다. 사실성과 회화성의 경계가 모호하기 때문인데, 이 부분에서 명확한 작가적인 시각을 전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어쩌면 배경을 생략한다든지, 또는 배경에 추상적인 이미지를 도입하는가 하면, 특정 부분을 약화시키거나 생략하는 식으로 인위성을 부여하는 것도 사실성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한 시도이다. 다시 말해 눈에 보이는 그대로의 이미지를 벗어나 조형적인 사고를 첨가함으로써 회화적인 이미지로 변환시키려는 의지의 표현이다. 뿐만 아니라 서로 연관성이 없는 소재를 함께 놓는가 하면, 비현실적인 공간해석을 곁들임으로서 지적조작의 흔적을 의도적으로 드러낸다. 다시 말해 중력이 좌우하는 물상의 존재방식에서 탈피하여 무중력 상태 또는 초현실적인 공간개념을 적용하는 것이다.

 

 파스텔

 

이로써 극렬한 사실적인 묘사가 허구의 세계임을 드러내는 것이다. 형태묘사는 사실성을 추구하되 소재가 놓이는 방식 및 공간조건에 인위성을 개입시킴으로써 맹목적인 사실성으로부터 탈출하고자 한다. 그의 작품이 비현실적인 공간개념을 가지는 것도 인위적인 공간조작에 기인한다. 이러한 조형적인 해석을 초현실주의라고 말한다. 현실에 근거하되 부분적으로 현실적인 공간감을 벗어나는 형태해석 그리고 공간개념을 통해 닫힌 감정 및 의식을 해방시키는 것이다. 그리하여 심리적인 갈등 및 불안의 그늘로부터 벗어나는 계기를 마련해준다.

그가 지향해온 초현실적인 공간은 현실과의 유연한 동거를 거부하지 않는다. 그가 취하는 소재가 모두 현실에서 얻고 있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허망한 망상이나 근거 없는 상상을 배척한다. 그리하여 현실을 보다 자유로운 공간으로 확장시키는 것이다. 그처럼 확장된 공간에는 우리의 꿈과 상상을 무제한 허용한다. 의식 및 감정의 자유로운 항해를 보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채

 

풍경과 정물을 교묘히 조합하는 작품의 경우 단순한 이미지의 합성이라는 차원을 넘어 꿈과 낭만 그리고 시적인 정서를 제공한다. 그것이 설령 현실과는 동떨어진 세계일망정 결코 현실적인 이미지와 유리된 공상의 세계는 분명 아니기 때문이다. 무중력 상태로 공간을 부유하는 듯싶은 이미지의 정물은 달콤한 환상을 부추긴다. 질량을 가진 물체가 공중을 부유한다는 것은 새처럼 날고 싶은 인간의 깊숙한 욕망의 구체적인 증표인 것이다. 초현실적인 공간개념을 도입하는 것도 잠재적인 욕망의 표출이다.

그는 인물을 비롯하여 정물 풍경은 물론이려니와 극사실로부터 추상적인 영역에 이르는 폭넓은 세계를 자유자재로 넘나든다. 이처럼 자유자재한 작가적인 역량은 견실한 소묘에 의해 지지된다. 인체소묘를 기반으로 한 정확한 비례감각 및 색채감각은 소재 및 대상에 구애받지 않는다. 초현실적인 경향의 작품이 말해주듯이 조형적인 상상은 현실세계를 초월한다. 극사실적인 형태가 초현실적인 공간개념과 만났을 때 조형공간의 확장은 필연적인 일이다.

 

            

              파스텔

 

그가 다루는 소재는 결코 특이하거나 기이한 것이 아니다. 돌멩이나 나뭇잎 하나도 버리지 않고 화실로 끌어들이는 그는 범신론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는지 모른다. 다시 말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물상은 저마다 신성이 깃들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저마다 고유의 가치가 있다는 시각이다. 여기저기서 거두어들이는 작은 물건들이나 자연물은 모두 그림의 소재가 된다. 그의 정물화에 등장하는 소재들은 모두 화실에 놓여 있는 것들이다. 허구나 상상의 이미지가 아니라 실재하는 물상이다.

그의 작업 중에서 정물이 차지하는 비중이 큰 것도 다채로운 소재들과 늘 함께 하기 때문이 아닐까. 이처럼 하찮은 물건들과 함께 하는 것은 세상에 대한 관심의 표출이고 넘치는 애정의 표현이다. 그냥 지나치고 말 물건 하나가 그의 그림 속에서 전혀 새로운 존재가치를 얻게 되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의 관심은 사람들의 시선을 현혹하는 화려한 꽃 따위의 생명감뿐만 아니라 무생물 하나에도 고유의 아름다움이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것이다.

 

             

               파스텔

 

그는 유채를 비롯하여 아크릴, 파스텔, 색연필 등 다양한 재료를 사용하여 작업한다. 최근에는 한동안 색연필에 심취, 인물을 포함하여 일반적인 정물 그리고 초현실적인 구성의 작품을 제작했다. 색연필은 그 재료의 특성상 채색 농도가 낮아 지극히 부드럽고 온화한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있다. 마치 아기의 피부처럼 곱고 부드러운 묘사는 꿈을 꾸는 듯싶은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섬세하고 미려하게 전개되는 색연필의 은은한 중간색 톤에 의해 이루어지는 형태는 새로운 시각적인 체험을 제공하고 있다. 극렬한 묘사력이 이끌어내는 사실적인 형태임에도 환상적이면서도 환각과 같은 미묘한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 그는 색연필이라는 재료를 통해 표현영역을 확장하고 있는 것이다.

초현실적인 감각은 일상적인 자연풍경이나 누드작업에서도 현실성을 뛰어 넘는 매혹적인 이미지를 불러들인다. 해석을 달리하는 색채이미지를 통해 현실감을 감소시키는 대신에 낭만적이고 시적인 정서를 부여하는 것이다. 누드작업의 경우에도 얼굴과 발을 화면 밖으로 밀어내는 대담한 구도를 통해 박진감 넘치는 여체의 미를 보여준다. 이와 같은 파격적인 생략은 시각적인 압박감과 더불어 여체의 곡선 및 볼륨을 한층 강렬한 이미지로 만들어놓는다. 이런 구도에 대한 발상은 초현실적인 감각의 소산이리라.   

 

 색연필

 

그의 그림에서 공통적으로 감지되는 정서는 서정성과 함께 정결하고 정적인 분위기다. 엄숙한 제의를 치르는 듯싶게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는 것이다. 그것은 어쩌면 개인적인 신앙과 관계가 있는지 모른다. 만물을 주재하는 절대적인 존재에 대한 무한한 경외심과 존경이 그림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다시 말해 어느 것 하나 무가치하거나 값싼 것이 없다는 겸허한 마음가짐이 온유하고 정결한 분위기를 유도하는지 모른다.

그는 단순히 실재하는 물상의 형태만을 미화하고 찬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 물상 하나하나에 깃들이는 순수한 영혼을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다. 살아 있는 존재만이 아니라, 생명이 없는 물건 하나에도 새로운 영혼을 깃들이도록 하려는 것이다. 그의 그림에는 그런 간구가 담겨 있다.  


<강경규전은 6월14일부터 7월14일까지 경기도 과천시에 위치한 수다갤러리(02-503-8064)에서 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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