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감상

명화감상 (2) - 피에트로 페루지노

펜보이 2008. 2. 3. 21:26
 

                                          

                                

                                1500년경, 피렌체 우피치미술관


 

  명작명품 세계 순례 - 피에트로 페루지노

 

 “젊은 남자의 초상”


 

  화가의 개성, 즉 독자성은 여러 측면에서 분석 검토될 수 있다.  조형적인 면에서도 형태는 물론이요, 선이나 색채에 의해서 개성이 표출된다.  그런가 하면 그림의 소재라든가, 내용만으로도 독자적인 세계가 가능하다. 

  15세기 이탈리아 움브리아파의 상징적인 존재인 피에트로 페루지노(1446-1523)는 특이하게도 중성적인 인물상으로 유명해진 경우이다.  다시 말해 남성이 여성적인 분위기를 지니고, 여성이 남성적인 이미지를 풍기는 인물화를 그렸다.  움브리아파는 이탈리아 중부 티베르강 상류지방 움브리아를 중심으로 활동하면서 원근법에 의한 공간 효과를 극대화시키는 독특한 풍경을 도입한 화파로 온화한 화풍을 특색으로 하는데 프란체스카, 시뇨렐리, 라파엘로를 배출, 르네상스미술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페루지노는 종국에 자신을 능가하는 제자 라파엘로의 빛에 가려졌지만 적어도 움브리아파에서 만큼은 그 정점에 있다.  치타 델라 피에베가 고향인 그는 페루지아에서 로렌초에게 기초를 배운 뒤 피렌체에서 다시 베로키오 문하에 들어갔는데, 이때 레오나르도와 만나 그로부터 많은 것을 얻는 입장이 된다.  특히 명쾌한 형태와 색채는 후배인 레오나르도의 영향이 뚜렷하다.  레오나르도의 영향이 후일 제자인 라파엘로에게 그대로 전해진다는 점에서 보면 그는 르네상스의 두 대가를 잇는 징검다리 역할을 한 셈이다.

  어떻든 그는 새롭게 유행한 유화의 기법 연구에 심혈을 기울여 부드럽고 아름다운 색채를 구사하게 되었다.  우아하고 차분한 종교적인 정서를 표현하는데 남다른 감각을 지닌 그의 작품은 1500년을 전후한 이탈리아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는 데는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  누구보다도 로마 은행가인 아고스티노키치는 그를 ‘이탈리아 최고의 작가’라고 공언할 정도였다.  실제로 이러한 칭송에 걸맞게 그는 그림으로서의 아름다움에 매료될 수 있는 장점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  그랬기에 1493년부터 수년 동안 감미로운 표현의 성모자상은 이탈리아 각지에서 주문이 쇄도했다.  그의 명성이 확고해진 것은 보티첼리, 그릴란다이오, 로셀리 등과 로마 시스티나 예배당의 벽면 장식을 맡아, ‘베드로의 열쇠 수여’를 제작한 이후였다.  견고한 세 개의 건축물을 배경에 두고 일렬로 도열한 인물들을 좌우 대칭으로 배치한 이 작품은 움브리아파 화풍의 전형으로 평가된다.

  “젊은 남자의 초상”은 레오나르도의 ‘모나리자’를 연상시킨다.  제작 시기로 보아서는 ‘모나리자’보다 3년 정도 앞섰지만 묘사 기법에서 레오나르도의 영향을 뿌리칠 수 없으니 두 작품을 하나의 관점에서 이해하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다만 배경을 어둡게 처리한 점에서는 크게 다르다.  그러나 인물의 표정 속에 담긴 신비스러움과 그같은 이미지를 조합하는 부드럽고 심오한 묘사 기법은 구분하기 어려울 만큼 두 작품이 유사하다. 

  여백을 거의 두지 않고 상체와 얼굴을 화면 가득히 채운 구도가 시야를 압박한다.  더구나 감상자의 마음을 잡아매는 커다란 눈동자와 갸웃이 기운 얼굴 모양은 무엇인가를 말하고 있는 듯해서 야릇한 감정에 사로잡히게 한다.  이처럼 시선이 닿지 않는 부분까지 밀착해 들어간 초상화 형식은 르네상스의 또 다른 성과이다.  서두에 언급했듯이 페루지노는 중성적인 인물화가 특징인데 이 작품에서도 그같은 표현이 두드러진다.  얼굴에 집중되는 빛으로 밝혀진 얼굴은 그대로 미소년의 모습임에 분명하나 자연스럽게 흘러내린 긴 머리칼과 꽃잎 같은 입술은 지극히 소녀적이어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헷갈리게 한다. (미술평론가 신항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