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감상

명화감상 (1) - 안토넬로 다 메시나

펜보이 2008. 1. 19. 15:18

 

                  

 

                  1465-70년경, 판 위에 유채, 45x34.5cm, 팔레르모 국립미술관  

 

 

   안토넬로 다 메시나

 

  “수태고지의 마리아”


 
  성모 마리아는 가톨릭교회를 중심으로 한 종교화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한 모티브이다.  동정녀이면서 성령에 의해 그리스도를 무원죄 잉태한 마리아는 그 자체가 하나의 드라마틱한 요소이다.  따라서 ‘마리아를 통해 그리스도에 귀의한다’는 마리아 숭배가 전통이 됨으로써 성모상 또는 피에타, 수태고지 등의 이미지로 회화 속에 빈번히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수태고지’는 그리스도를 잉태한 사실을 대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알리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는 일종의 주제화이다.  이처럼 ‘수태고지’를 제재로 하는 그림은 초기 그리스도교 미술로부터 시작하여 중세 전성기를 거쳐 르네상스에 이르는 동안 화가들이 가장 즐겨 다루는 주제가 되었다.  그러나 ‘수태고지’는 내용은 같지만 화가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된다.  초기에는 성모 마리아를 실감기와 결부시키는 이미지로 표현되었고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에는 천사를 비롯하여 비둘기, 백합, 짐승 등 상징적인 소재가 등장한다. 

  그런가 하면 안토넬로 다 메시나(Antonelo da Messina,1430-1479년경)의 작품과 같이 상징적인 소재가 없이 마리아만을 대상으로 하는 ‘수태고지’도 있다.  상징적인 소재의 배치 여부는 화가 자신의 조형적인 관점에 의해 결정될 뿐 양식상의 규범은 없다. 

  메시나는 “수태고지의 마리아”를 통해 간접적인 어법을 구사하고 있다.  다시 말해 르네상스 시대의 ‘수태고지’가 보여주는 천사의 등장이라는 상식을 벗어나 수태고지, 즉 聖告(성고)의 이미지를 마리아의 내적인 세계에서 찾아내고자 한 것이다.  수태고지를 모티브로 하면서도 실제로는 그리스도의 잉태 사실을 전하는 메신저나 상징적인 소재가 보이지 않는, 마리아의 모습에만 초점을 맞춘 단순한 초상화 형식으로 묘사하고 있다. 

  성서를 읽고 있다가 수태 사실을 알게된 마리아의 모습을 암시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이 작품에서는 보다 인간적인 이미지가 강조되고 있다.  메시나는 여기에 소개되는 작품과 거의 비슷한 또 하나의 ‘수태고지의 마리아’를 그렸는데 뮌헨의 피나코텍 소장 작품은 같은 자세이면서도 수태 사실을 듣고 몹시 놀란듯 두 손으로 가슴을 감싸는 모습이다.  그에 비할 때 이 작품은 수태 사실을 의연하게 받아들이는 보다 승화된 이미지로 표현되고 있다.  단아한 자세에 시선은 낮추면서 생각에 잠기는 듯한 표정은 감정의 동요가 전혀 감지되지 않을 만큼 이지적이다.  기교적인 표현을 떠나 초월적인 이미지에 중점을 둔 표현임을 직감케 한다.  배경을 어둡게 처리한 것은 플랑드르 회화의 영향으로 생각되지만 전체적으로 간결한 구도와 마리아에 부여하는 밝은 빛에 의해 깨어나는 투명한 공간감은 그만의 독자적인 해석이다.

  남부 이탈이아 메시나 태생인 그는 일찍이 나폴리의 콜란토니오 밑에서 플랑드르 유채기법을 익힌 뒤 밀라노에서 크리스투스와 만남으로써 작가로서의 기초를 굳건히 다졌다.  고향에 돌아온 그는 1456년 화실을 마련하고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그러다가 1475년 베네치아의 산 카시아노 성당 제단화를 제작하면서 확고한 기반을 구축하게 된다.  이후 그의 활동무대는 베네치아를 중심으로 밀라노로 확대되었으며, 작품은 후기에 이를수록 더욱 무르익어 교분이 두터웠던 벨리니와 함께 베네치아파의 거장으로 자리한다.  특히 ‘서재의 성 히에로니무스’와 같은 작품은 건축학적인 장중함과 견고함을 보여주는데 이는 플랑드르 회화의 치밀함과 밝은 색채와의 절묘한 융합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개인적인 성공과 더불어 유채화 기법을 보급하는데도 크게 기여한 인물로 평가된다. (미술평론가 신항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