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잎의 노래
신항섭
밑동이 어김없이 잘려나간
배추밭 고랑 사이로
간신히 일어서는 풀잎이 저 홀로
달동네 허름한
저녁식탁에 오른다
끼니마다
달그락거리며 쇳소리로 우는
반달 숟가락을 달래고
소반에 눕는 풀잎은 저 홀로
빈 물그릇에 들어가
풀죽이 된다
그러고도 남은 힘으로
기력이 쇠잔한 할아버지
놋요강도 거듭거듭 채운다
성근 판자지붕 사이로
찬바람이 똬리 틀고
밑 빠진 됫박에 별이 뜨면
풀잎은 저 홀로 무성히 자라
채워지지 않는 아이의
허기진 잠자리를 지킨다
그 풍경을 멀찍이서 지켜보다가
웃다가 울다가
제물로 잦아드는 그믐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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