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시평

미술시평 (23) - 지역축제로서의 비엔날레와 국제미술제

펜보이 2007. 9. 11. 23:05
 

예술평론가협의회 세미나


지역 축제로서의 비엔날레와 국제미술제


 

지방자치제도가 실시된 지도 벌써 10여년이 지났다. 그 동안 각 지역단체를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형태의 정치 경제 문화 사회제도는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차츰 안정화의 길로 들어서고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아직도 중앙의 영향을 배제할 수 없을 만큼 각 지역의 실질적인 자립도는 미약하기만 하다. 무엇보다도 경제적인 자립도가 낮은 지역이 많아 여전히 중앙정부에 많은 부분 의존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실정이다. 경제부문에서 자립도가 낮으면 모든 면에서 중앙의 입김 또는 그 영향으로부터 자유롭기 어렵다. 국가는 물론이요, 지역사회를 움직이는 동력은 다름 아닌 경제력이기 때문이다.

그런 가운데서도 지역 문화단체들은 이전과는 다른 의욕과 행동을 통해 새로운 형태의 지역 문화를 활성화시키고 정착시키기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실천에 옮기고 있다. 일반적으로 지역사회에서 전개되고 있는 문화 활동은 그 지역의 특수성을 살리는 쪽으로 가닥을 잡아가고 있다. 하지만 초기에는 문화적인 활동 경험이 없는 상태에서 출발했으므로 시행착오도 적지 않았다. 그러다가 차츰 문화 활동에 대한 이해 및 경험이 축적되면서 자립형 형태의 문화 활동이 가능해지게 된 것이다. 최근에 볼 수 있는 지역사회의 문화 활동이란 대체로 각 지역의 전통적인 문화행사 및 특산물 홍보를 겸한 축제형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역사적이고 전통적인 문화행사의 경우에는 지자체의 운명과 결부시키는 듯싶을 정도로 그 규모 및 내용에서 전력투구한다는 인상이다. 그런가 하면 새로운 아이템을 개발하여 그 지역만이 가지고 있는 문화적인 콘텐츠의 특성화를 모색하기도 한다. 이러한 형태의 문화행사는 예술방면에서 많이 이루어지는데, 미술 영화 연극 분야가 그 대표적인 예에 속한다.

특히 미술 분야에서는 비엔날레라는 축제 형식의 미술행사를 통해 지역 권력을 형성할 정도로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따라서 각 지역에서는 다투듯 유사한 형태의 비엔날레를 만들어 지역미술 발전을 모색하고 있다. 비엔날레의 경우 지역의 특수성이나 전통문화와는 상관없이 정치적이거나 또는 대외적인 영향력 증대를 목표로 이루어지는 예가 많아지고 있다. 순수한 미술축제로서의 의미보다는 정치적인 또는 미술권력을 쟁취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고 있는 것이다.

비엔날레는 첨단의 미술축제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가장 앞서가는 미술활동의 하나인 것이다. 비엔날레는 새로운 미술이 소개되고 검증받는 절차라고도 할 수 있다. 비엔날레는 새로운 미술활동을 전개하는 데 따른 그 교두보라고도 할 수 있다. 새로운 조형적인 이념이나 방법론 또는 기발한 발상을 미술로 끌어들이기 위한 장치 역할을 하기도 한다. 어쩌면 현대미술의 전반이 비엔날레를 통해 선전되고 확산되는 과정을 거쳤다고 할 수 있다. 비엔날레야말로 현대미술의 전진기지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여러 곳에서 열리는 다양한 형태의 비엔날레가 모두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지 베니스비엔날레가 가지고 있는 영향력을 여타 비엔날레가 따라갈 수 없는 일이다. 베니스비엔날레야말로 첨단의 미술활동을 소개하고 검증받는 무대라는데 손색없다. 그 밖의 후발 비엔날레는 베니스비엔날레의 재생산 기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향력이 미약하기 때문이다. 참여 작가의 면면이나 내용에서 베니스비엔날레의 명성에는 한참 미치지 못한다. 역시 역사와 전통의 무게와 신뢰 앞에서는 어쩔 도리가 없는 모양이다.

비엔날레는 어떤 형태의 것이든지 예술적인 트렌드를 선점한다는 전략적인 목표를 가지고 있다. 방법론이나 재료 또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통해 새로운 조형적인 이념 및 양식을 만들어냄으로써 새로운 문화적인 패러다임의 생산 및 파급 효과를 기대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대다수의 비엔날레는 이런 목표 또는 기대와 달리 서구 비엔날레의 답습 또는 재탕이라는 비판을 면치 못한다. 한마디로 재생산기지로서의 역할에 그치는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나라에서는 웬 일인지 비엔날레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다. 비엔날레야말로 대외적으로 인정받기 쉬운 미술축제일 뿐더러 권력을 쟁취하기 쉬운 수단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 아닐까. 실제로 각 지역에서 열리는 비엔날레의 대다수는 지역 권력을 독점하는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는 의혹이 짙다. 이는 거기에 쏟아 붓는 예산이 여타의 미술활동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데 기인한다. 돈이 있는 곳에 권력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최근에는 비엔날레와는 또 다른 형태의 국제미술제가 늘어나고 있다. 국제미술제는 비엔날레와는 달리 연례행사로 치러지는 경우가 많은데 비엔날레보다 상대적으로 적은 예산으로 가능하다는 점에서 지역미술축제의 한 본보기가 되고 있다. 물론 아무리 작은 규모의 전시회라고 해도 국제전인 만큼 거기에 드는 예산은 수억 원대에 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제미술제는 해당 지역을 중심으로 활성화되어 가고 있는 추세다. 전시회에 따라서는 외형적인 면은 물론 내용적으로도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처럼 긍정적인 성과는 국고지원이 따름으로써 규모 있는 예산집행이 가능해진 데 따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비엔날레 또는 국제미술제가 진정으로 성공적인 미술행사가 되기 위해서는 지역 권력이나 전시행정 또는 타 지역과의 경쟁이라는 목표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비엔날레는 그 형태 및 규모 그리고 예산에 맞게 새로운 미술운동의 전진기지로서의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만일 다른 비엔날레의 이념이나 형식을 뒤따르는 식이 돼서는 곤란하다. 비엔날레에서 이류는 의미가 없다. 일류가 되지 못할 바에는 기존의 비엔날레와는 전혀 다른 발상으로 차별화의 길을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열리고 있는 비엔날레 및 국제미술제만 하더라도 광주비엔날레를 비롯하여 부산비엔날레, 서울미디어비엔날레, 대구국제섬유비엔날레,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충남), 세계서예비엔날레(전북), 세계도자기엑스포(여주, 이천)가 있으며, 국제미술제로는 부천국제행위예술제, 청년아시아미술제(창원), 공주국제미술제, 포천아시아미술제, 제주국제설치미술제 등이 있다. 여기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각 지역마다 서로 뒤질세라 다투듯 대형국제미술제를 개최하고 있는데, 마치 무슨 경연장처럼 보이는 것이다. 이러다가는 전 국토의 미술화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어쨌든지 이들 비엔날레 또는 국제미술제가 지역 미술축제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그 지역이 가지고 있는 문화적인 특성을 살린다든가, 전혀 새로운 개념의 미술운동을 창안하는 방향으로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해야만 어느 미술제와도 다른 차별성을 부각시킴으로써 그 존재성을 과시할 수 있을 것이다. 만일 그 지역이 가지고 있는 문화적인 특성을 살리는 쪽으로 아이디어를 개발한다면 지역 주민의 참여를 유도하게 되어 진정한 지역미술축제로서 자리 잡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 지역 주민이 잘할 수 있는 일을 개발함으로써 자발적인 참여도를 높이게 되고, 그리하여 지역의 문화적인 특성을 알리는 좋은 계기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지역의 문화적인 특성을 알리는 일이라면 지역 주민들도 자부심을 가지고 적극 참여하게 될 것이며, 이로써 지역미술축제로서의 본연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국제미술제 역시 진정한 의미에서 지역미술의 발전을 위한 미술행사가 돼야 한다. 비엔날레를 흉내기라도 하듯 권력을 행사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돼서는 곤란하다. 어느 의미에서는 국제미술제야말로 지방자치제도에 가장 합당한 미술축제일 수도 있다. 우선 규모가 작기 때문에 적은 예산 및 인원으로도 운영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중소도시를 중심으로 하는 지역에서 문화예술체험을 할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다는 현실을 감안할 때 국제미술제와 같은 소규모 미술행사는 그 운영방식 및 내용에 따라서는 최상의 지역문화축제가 될 수도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지역주민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할 수 있는 프로그램 개발이 절실하다. 지역주민의 참여 없는 미술행사란 아무리 명분이 뚜렷하고 대외적인 홍보가 잘 된다고 할지라도 그 의미는 반감하고 말 것이다. 바꾸어 말해 지역주민들에게 실질적인 문화예술체험 및 향유의 기회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지난 10월9일부터 11월2일까지 공주에 있는 임립미술관의 주최로 열린 제3회 공주국제미술제는 지역 국제미술제가 가야할 방향을 보여준 예라고 할 수 있다. 정부로부터 4억 원의 예산을 지원받아 치러진 공주국제미술제는 주제와 내용 그리고 운영방식에서 지역축제로서의 성공가능성을 한층 높여준 행사였다. 공주국제미술제 운영위원회는 자칫 단순한 미술전시회로 끝날 수 있음을 직시하고 보다 많은 지역주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하는데 주력함으로써 축제형식으로 만들어갔는데, 결과적으로 기대이상의 성과를 거두었다. 한마디로 올해로 세 번째가 되는 공주국제미술제는 미술전시회도 그 운영방식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지역축제행사가 될 수 있음을 확인시켜 주는 미술행사였다고 할 수 있다.

공주국제미술제는 “人인”을 주제로 하고 부제로 ‘너’와‘나’ 그리고 ‘우리’라는 부제를 내세워 주제전과 특별전으로 나누어 전시했다. 주제전은 15개국 80명의 평면작업으로, 그리고 특별은 국내작가 40명의 입체 및 설치작업으로 이루어졌다. 또한 부대전시로는 ‘충남지역 청년작가 초대전’을 비롯하여 걸개그림전, 깃발전, 연 그림전을 마련하여 입체적인 전시형태를 취했다. 특히 ‘충남지역 청년작가 초대전’은 소외감을 느끼기 쉬운 지역미술인들의 호응 및 참여도를 높이기 위한 아이디어였다.

그런가 하면 학생들의 참여도를 높이기 위해 ‘사람이 있는 풍경’이라는 타이틀로 공주국제미술제 실기대회를 개최하여 역시 국제미술제의 주제와 합치되도록 하였다. 뿐만 아니라 미술체험이라는 행사를 통해 민속놀이(떡매치기,다듬이놀이, 투호놀이, 널뛰기, 재기차기, 맷돌돌리기) 체험의 기회를 갖는가 하면, 그리기, 만들기, 건축 따위의 직접적인 체험의 기회를 제공했다. 아울러 주말에는 인형극과 오카리나 연주, 조병주와 연주자, 정은혜무용단, 정연민 퍼포먼스 등 특별 예술 공연을 기획하여 지역주민들의 참여도 높이는가 하면, ‘예술과 복지 국제회의’를 개최하는 등 다양한 문화행사를 병행했다.

이로써 알 수 있듯이 공주국제미술제는 미술행사가 가지고 있는 일반적인 상식의 범위를 넘어 진정한 지역문화 축제로서 자리 잡겠다는 의지를 보여주었다. 어떻게 보면 미술전시 자체보다 부대행사가 더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렇다. 미술전시회는 정적인 행사이다. 정적인 행사만으로는 동적인 축제의 이미지를 이끌어내기 어렵다. 따라서 정적인 미술행사에 동적인 이미지를 끌어들임으로써 축제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공주국제미술제는 개방적이고 진취적이며 적극적인 사고를 통해 지역주민에 보다 가까이 다가서는데 성공한 유연한 미술행사라고 평가할 수 있다. 

예술이라는 것은 그것이 어떤 장르이든지 간에 한 가지 속성만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주변 예술과 다양한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 연결고리를 이어줌으로써 우리의 삶과 밀착된 문화의 형태로 자리 잡게 된다. 예술이 문화적인 속성을 버리고 단지 예술성 그 자체만을 문제 삼는다면 우리의 삶과 유리될 수밖에 없다. 삶과 유리되는 예술이란 문화적인 힘을 갖지 못한다.

지자제 이후 지역문화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지고 있는 현상은 고무적이다. 지역문화 발전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의 개발하고 시행하는 일련의 노력이 점차 그 성과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국제미술제와 같은 큰 규모의 행사는 어쩌면 지역의 전통문화 축제와 연계시키는 방안도 필요할지 모른다. 그래야만 자생력을 높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어느 면에서는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단순한 미술행사로서의 성격을 넘어 토착문화와의 접목을 통해 다양한 계층을 참여시킬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함으로써 명실공이 지역문화축제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만 일과성으로 끝나는 미술행사가 아닌, 지역주민으로부터 사랑받는 항구적인 문화예술축제로서 뿌리내릴 수 있을 것이다. (신항섭)  


<2006년 예술평론가협의회 세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