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시평

미술시평 (21) - 중단예술사의 복원 가능성 (미술)

펜보이 2007. 9. 6. 22:50
 

  중단예술사의 복원 가능성 - 미술

                          

  사상 및 이념의 차이를 해소하는 것이 급선무

 


  한반도가 남북으로 나뉘어진지도 이미 반세기가 흘렀다.  단일민족이 이처럼 사상 및 이념적인 차이로 인해 둘로 나뉜 채 적대적인 관계를 지속하고 있는 예는 지구상에서 한반도 말고는 다시없다.  인간끼리의 살육을 저지르는 전쟁이 가장 큰 비극이라고는 하지만 한 가족이 헤어져 서로간의 왕래는커녕 생사확인조차 할 수 없는 상태로 반세기를 보낸 한반도의 현실보다 더 큰 비극이 과연 따로 있을까. 

  최근 한반도 상황을 보면 남북한간에 불신과 위협으로 점철한 반세기 동안의 적대적인 관계를 청산하고 바야흐로 칠 천만 민족의 숙원인 남북통일에 대한 희망을 부풀리게 한다.  남한의 최고 지도자가 북한을 방문하고, 그에 대한 상호주의에 입각하여 북한 최고지도자가 남한을 방문하기로 되어 있는 현 상황은 이전에는 꿈에도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다.  더구나 제한적이기는 하나 남북한 이산가족들이 상호 방문을 계속하고 있는 등 남북한간의 화해무드는 가히 절정으로 치닫고 있는 듯한 분위기다.  적어도 이러한 상황이 지속된다는 전제하에서 사회 각 분야는 통일에 대비, 반세기 동안 단절된 상태에서 만들어진 여러 가지 이질적인 문제들을 해소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은 이제 필연적인 사실이 되고 있는 듯싶다. 

  미술계도 이에 대한 준비가 필요한 시점이다.  어느 날 갑자기 통일이 됐을 때 겪게 될지도 모를 남북 미술의 현격한 차이에서 비롯된 갈등을 극복해나갈 수 있는 보다 실제적이고 적극적인 프로그램이 마련되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같은 민족으로서 분단의 아픔 속에서 지나온 지난 반세기의 공백을 메울 수 있는 방안과 실질적인 노력이 있어야 한다.  국토의 통일에 앞서 오 천년 역사를 지닌 민족공동체로서의 통합이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다.  반세기 동안 단절된 상태에서 사상 및 이념은 물론 정치체제까지 완전히 다른 길을 걸어온 탓에 통일이 되더라도 융화되기가 쉽지 않으리라 예상되기에 그렇다.

  통일에 압서 민족적인 동질성 확인에 필요한 정서적인 통합이 무엇보다도 시급한 것이다.  민족이 하나가 되는데는 먼저 반세기 동안 쌓여온 문화적인 차이를 극복하거나 해소할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를 위한 방안의 하나로 단절된 문화예술의 교류를 통해 서로간의 문화예술에 대한 공통점 및 상이점을 명확히 가려내어 이를 토대로 분단의 예술사를 복원해야 한다는 것은 필연적인 요구이다.  그런데 이러한 문제는 생각처럼 간단해 보이지 않는다.  아직도 남북한은 엄연히 대립적인 구도 속에 놓여 있을 뿐만 아니라, 서로를 이해하는 데 따른 실질적이 노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남한의 미술과 북한의 미술은 사상 및 이념의 차이만큼이나 확연히 다른 길을 걸어왔다.  민주주의 체제하에서 있는 남한은 개인에게 주어질 수 있는 표현의 자유를 가능한 한 확대해왔다.  물론 남한에서는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 따라 공산주의를 찬양하거나 반대로 민주주의 체제를 부정하는 따위의 표현에 대해서는 제한적이었다.  다만 남한에서는 리얼리즘뿐만이 아니라, 현대적인 모든 형태의 미술양식을 받아들여 이를 개인적인 미술활동에서 거의 제한 없이 활용할 수 있었다.  이에 반해 공산주의 체제하에 있는 북한은 표현양식으로는 사회주의리얼리즘을 만족시킬 수 있는 하나의 방향으로만 왔다.  또한 내용에서 북한미술은 개인적인 표현의 자유보다는 공산주의 혁명 및 노동의 미화, 김일성에 대한 숭배 찬양, 그리고 항일운동 따위를 제재로 하는 제한된 범위 안에서 집단주의적인 형식을 고무해왔다.

  이처럼 뚜렷이 다른 미술양식은 남북한간에 서로 용납하거나 융화할 수 없는 전혀 이질적인 상태로 고착돼왔다.  여기에서 알 수 있듯이 통일이 됐을 경우 남북한 미술인들이 겪어야 할 혼란과 갈등은 예상보다도 훨씬 심각할 수 있다.

  그러면 여기에서 북한미술의 실상을 살펴보자.

  북한미술은 크게 ‘조선화’와 ‘유화’ ‘조각’ ‘선전화’ 그리고 ‘공예’ ‘무대미술’ ‘건축’으로 분류되는데 이들 미술 장르는 모두가 “공산주의 형명정신으로 무장된 미술은 또한 그것이 마땅히 지녀야 하는 당성, 노동계급성, 그리고 인민성의 원칙에 따라 모든 ‘기회주의, 부르주아 사상, 봉건 유교사상, 자연주의, 형식주의’ 등의 반혁명적이요 불건전한 사상과 반동적 부르주아 문예사조에 대해서 비타협적으로 투쟁해야 한다.  그리하여 모든 예술은 모름지기 ‘당의 유일사상, 김일성의 위대한 혁명사상’을 철저히 옹호. 관철하는 것을 무엇보다도 우선하는 임무로 삼아야 하는 것이다”(북한의 미술, 이 일, 서성록 공저, 고려원)로 요약된다.

  이와 같은 북한미술의 특징에서 볼 수 있듯이 개인주의적인 창의성을 발휘하는 것은 거의 용납되지 않는다.  여러 경로를 통해 접하고 있는 북한미술의 실상은 남한의 자유로운 형식주의가 전혀 통용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개인적인 감정이나 사상 그리고 정신적인 세계를 대상으로 하는 순수한 의미에서의 창작활동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단적으로 말해 미술가 개인의 표현적인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다.  따라서 개인적인 작업을 포함하여 모든 형태의 창작활동에서 형식적으로는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종속하는 것으로 한정한다.  아울러 작품 발표는 전적으로 국가통제하에서 이루어지고 있을 뿐, 작가 개개인의 임의적인 발표의 기회는 전혀 주어지지 않는다.  개인의 창작 및 발표와 관련된 사항은 전적으로 국가에 귀속되어 있는 것이다.

  반면에 남한에서는 전통적인 형식은 물론이요, 서구미학을 제한 없이 받아들이고 있을뿐더러 개인적인 표현의 자유가 거의 보장된다.  물론 공산주의와 대치하는 상황을 전제로 하여, 남한의 민주체제를 부정하거나 특정인에 대한 비판과 함께 공산주의를 찬양 고무하는 내용은 제한을 받아왔다.  이와 같은 부분적인 제한이 있다고 하더라도 일체의 형식주의를 수용함으로써 다양한 표현양식 및 형식이 존재한다.  또한 발표의 자유가 보장됨으로써 미술관을 비롯하여 상업화랑 그리고 해외전 등 다양한 방법으로 창작활동을 전개할 수 있다.

  여기에서 알 수 있듯이 남북한의 미술은 서로 상이한 체제만큼이나 완연히 다른 길을 걸어왔다.  이러한 괴리는 남북통일이 갑자기 실현되었을 때 큰 혼란을 가져올 것은 명약관화한 일이다.  통일 이전에 서론 다른 체제에 따른 가치관의 차이를 극복할 수 있는 사전 정지작업이 필요한 것도 이 때문이다. 

  남북한 미술이 안고 있는 문제는 표현형식의 상이함보다는 미술에 대한 기본적인 시각, 즉 예술적인 가치와 목표를 어디에 두느냐에 있는데, 이 부분에서 서로의 미술형태를 전혀 인정할 수 없는 지경으로까지 왔다.  북한의 미술은 국가의 관리체계를 벗어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창의성이 발휘되지 못하는 상황이기에 순수한 의미에서의 예술이라고 볼 수 없다는 입장인 반면에, 남한의 미술은 서구미학을 그대로 추종하는 것에 다름 아니어서 ‘주체성’을 상실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이러한 시각차이는 국가체제나 이념 및 사상을 떠나 예술에 대한 본질적인 문제에 접근하여 서로 공통성을 찾아내는데 가장 큰 장애가 될 수 있다. 

  이러한 남북한 미술인의 시각차이는 단순히 남북이 분단된 시점에서 출발하는 것은 아니다.  해방 이전에 이미 사상과 이념의 방향이 다른 미술가들이 집단적인 활동을 통해 서로 반목하고 대립해온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남북한 미술이 서로 다른 길을 걸어온 것은 국가체제 문제에 앞서 미술인 개개인의 사상 및 이념적인 차이에 기인하는 것이다.  남한에서는 북한미술가들을 개인의 창작의 자유가 억압받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북한미술가 당사자들은 국가 관리체계에 들어가는 것을 당연한 사실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점이다.  북한미술가들 중에는 공산주의의 사상 및 이념에 동조하여 월북한 경우가 많다는 사실이 이를 말해준다.

  당시 상황을 보자.  “1945년 8월18일에는 전국 문화인들의 모임인 조선문화건설중앙협의회가 생기고, 그 산하에 조선미술건설본부가 발족을 보았다...그러나 미술계에도 침투한 좌익세력으로 그해 9월 조설프롤레타리아미술동맹이 발족하였고 미술계의 분열이 격심해지기 시작했다.  미술건설본부가 10월20일부터 29일까지 덕수궁 석조전에서 해방기념미술전람회를 개최하곤 곧 해산하게 되는데, 좌우대립이 노골화되기 시작했음을 보여주는 현상이다. 건설본부가 해산되고 다시 건설본부의 미술가들이 중심이 된 조선미술협회가 발족된 것은 그해 말이었다...46년 2월에는 프로미술동맹의 일부 미술가들과 조선미술협회에서 탈퇴한 작가들이 합류하여 다시 조선미술가동맹이라는 새로운 좌익세력의 그룹을 출범시켰다.  그런가하면 같은 달에 일부 미협 탈락작가와 무소속 미술인 등이 합류하여 민족미술 정립이란 기치 아래 전국 미술인대회를 열고는 조선조형예술동맹을 결성하였다.  11월에 가서 이 좌익세력의 단체는 합동전시회를 가지고는 통합을 보게 되는데, 그것이 조선미술동맹이었다.  이로써 조선미술협회와 조선미술동맹이 미술계를 양분하는 양상을 드러냈다” “...일부 미술가들은 강제 월북되기도 하고 전시중 실종되는 등 인적 손실도 적지 않았다.  물론 그 동안 지하로 잠적했거나 사태를 관망하고 있던 좌익계열의 작가들은 이때 거의가 자진 월북하였다...”(한국현대미술사, 오광수 저, 열화당 미술선서)

  여기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해방과 더불어 3.8선을 기점으로 남북으로 국토가 분단된 상황을 그대로 따라가면서 미술가들도 사상 및 이념에 따라 좌우익으로 분열하여 반목 대립하고 있었다.  이러한 과거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남북한 미술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현실에서 남북통일이 된다고 해서 벌어진 골이 쉽게 메꾸어질 수 있는지 의문이다.  현 단계에서 정치적으로는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는 방향으로 가고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혀 다른 정치적인 문화적인 환경으로 변질돼 있는 현실을 어떻게든 극복해야만 한다.  통일이란 단순히 국토의 통합만을 의미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 남한의 미술계는 통일에 대비하여 어떠한 노력을 하고 있는가.  1989년 10월에 발표된 납.월북 미술가들에 대한 해금이후 미술계는 과거사를 불문에 부치고 일단 남북화해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싹트기 시작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맨 먼저 북한 미술가들과 접촉을 시도한 것은 민족민중미운동술전국연합이었다.  민미련은 1993년 일본 동경에서 처음으로 북한미술가들과 직접 만나 ‘코리아통일미술전’을 개최했다.  비록 한반도가 아닌 제삼국 일본에서 만나 전시회를 열었으나, 북한 미술가들과 함께 했다는 것은 당시 정치적인 상황으로 보아 큰 진전이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일본 미술세계(주)는 역시 동경에서 남한의 화가들과 북한의 만수대창작사 소속 화가들의 공동전시회를 마련함으로써 민간 차원의 미술교류를 확대하는 계기가 됐다.  ‘코리아평화미술전’으로 명명된 이 전시회는 매년 도쿄에서 연례적으로 열리는 행사로 굳히고 있는데 그 동안 몇 차례 남북한 작가들이 직접 자리를 함께 하면서 우의를 다지기도 했다.  그 후 북한 작가들의 작품은 미술관 및 개인 화랑을 통해 남한에 간헐적으로 소개되고 있다.  이 전시회에서 북한 작가들은 조선화 유화인데 정치성이 배제된 자연주의적인 순수미를 추구하고 있는 작품을 출품하고 있다.  이 전시회의 연장선상에서 미술세계는 ‘코리안평화미술전’에 참가하는 남한의 작가들의 북한방문을 실현시켰다.  1999년 여름 남한의 원로작가들이 북한 만수대창작사를 방문하고 ‘코리안평화미술전’에서 만난 북한화가들과 재회하였으나, 미술교류를 위한 그 어떤 성과도 거두지 못한 채 평양을 비롯한 백두산, 묘향산 등 명승지 여행을 하는데 그치고 말았다.

  이처럼 현재로서는 남북한 미술인들의 교류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도 북한의 입장에서 남한과의 광범위한 미술교류는 정치적인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다른 분야와 달리 미술은 시각예술이라는 점에서 남한의 다양한 형식이 북한에 소개될 경우에 올지도 모를 혼란을 극복할 수 있는 뚜렷한 대안이 없는 상태인 것이다.  따라서 정치적인 상황이 크게 바뀌지 않는 한 미술분야에서 만큼은 더 이상의 진전된 관계로 발전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남한의 입장에서는 가만히 현 상태를 좌시할 수는 없다.  진정한 통일이란 어쩌면 문화적인 공통성, 즉 민족적인 정서의 융합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현 단계에서 남한 미술계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코리안평화미술전’처럼 사상 및 이념이 개입되지 않은 순수한 표현의 제한적인 사실주의의 범주의 작품만을 대상으로 하여 교류전을 지속시켜 나가는 일뿐이다.  이러한 형태의 미술교류 이외에는 더 기대할 것이 없다는 뜻이다.  단순히 정치적으로 해결할 수 없을 만큼 남북한 미술의 사상 및 이념의 차이는 너무나 크고 뚜렷하기에 그렇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남북한의 진정한 교류가 이루어지고 궁극적으로 통일로까지 발전시키기 위해 현 시점에서 취할 수 있는 방법은 남북한 미술계가 서로의 정치체제를 인정함으로써 이질적인 미술형식 및 내용이 그 정치체제에 기인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점이다.  물론 이 문제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를 인정하지 않고서는 그 어떠한 형태의 미술교류도 더 이상의 진전된 단계로 가기 어렵다.

  미술교류의 참뜻은 상호주의의 원칙에 따라 서로간에 왕래하면서 동등한 조건으로 작품전시회 따위의 미술활동을 함께 하는 것이다.  이러한 원칙 및 조건이 충족되지 않는 미술교류는 현 단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따라서 남북통일이 되지 않는 한 미술사의 복원도 요원한 일이다.  반세기 동안 증폭돼온 불신과 위협이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듯이 미술사의 복원은 어느 한 쪽만의 기대와 노력으로는 해결될 수 없는 것이다. (신항섭)

 

<2001년 예술평론가협의회 세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