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시평

미술시평 (13) - 미협 새 집행부에 바란다

펜보이 2007. 8. 1. 09:36
  미협 새 집행부에 바란다



  세계의 역사는 정치의 역사였고 종교의 역사였다.  따라서 역사의 중심에는 정치가와 신을 대신하는 종교지도자가 있었다.  정치가와 신탁에 의한 종교지도자는 항상 백성과 신자를 위한 희생의 존재인 것처럼 행동해왔다.  다시 말해 백성과 신자 위에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봉사하는 것임을 강조해왔다.  실제로 백성과 신자를 위해 헌신적인 노력을 한 정치가와 종교지도자가 적지 않다.  어쩌면 오늘 이 세상이 여러 가지 복잡한 문제에도 불구하고 그럭저럭 지탱해 갈 수 있는 것은 비록 그 숫자가 적으나마 일부 올바른 정치가와 종교지도자가 있었기 때문이리라는 생각이다.  그러나 역사를 돌이켜보면 진정 백성을 위하고 신자를 위해 헌신한 정치가와 종교지도자가 과연 얼마나 있었던가. 

  처음에는 누구나 역사에 길이 남을 정치가와 종교지도자가 되겠다고 다짐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처음의 다짐을 잊은 채 전쟁을 일으키거나 사리사욕에 빠져 백성과 신자를 희생시키는 일이 적지 않았다.  인간을 망각의 동물이라고 했던가.  역사를 보면 정치가의 대다수가 처음 시작할 때의 그 순수한 결의를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잊고 만다.  그 이유는 개인적인 욕심 또는 주변 사람들의 감언이설에 넘어가 그만 세상을 바로 볼 수 있는 객관적인 시각 및 올바른 판단력이 흐려지는데 원인이 있다.  그래서 세상이 뒤죽박죽이 되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달콤한 유혹에 쉽사리 빠져든다.  육신을 편하게 만드는 물질적인 유혹에 쉽게 넘어가는 것이다.  물질적인 풍족함이 육신을 편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하면 좀처럼 그로부터 헤어나기 어렵다.  인간이 주어진 생명을 유지하면서 사회생활을 하는 데 필요한 만큼의 먹고 입고 자는 데는 그리 많은 물질이 필요하지 않다.  그런데도 인간세상은 필요 이상의 것을 만들어냄으로써 물질적인 욕구를 끝없이 자극한다.  이는 단순한 육신의 편안함을 넘어 정신적인 사치를 즐기려는 또 다른 욕구에서 비롯된다.  육신의 편안함을 위한 물질적인 필요성은 한계가 있는 반면에 정신적인 사치를 위한 욕구는 끝이 없다.  남이 가지지 못한 것을 마음대로 가짐으로써 남보다 우월한 지위에 있는 것처럼 생각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  남이 없는 새로운 무엇을 끊임없이 찾는 까닭이다.  그와 같은 태도야말로 자신은 보통 사람과 다르다는 인식 아래, 남으로부터 자신을 구별지으려는 차별의식의 발로이다.

  차별의식에는 선민의식 권위의식 우월심 명예심 공명심 따위가 있는데, 이는 모두 사회라는 커다란 공동체를 이끌어가기 위한 정치적인 술수에 의해 만들어진 허상에 지나지 않는지 모른다.  그런 차별의식을 만들어 줌으로써 사람들로 하여금 거기에 빠져들도록 하여 정치력을 행사할 수 있는 환경을 용이하게 만들자는 것이다.  개개인이 그런 차별의식에 사로잡히면 정치 따위에는 관심을 갖지 않는다.  개인적인 욕구를 채우는 데만 몰두함으로써 정치로부터 무관심한 상태가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그런 차별의식을 통해 보통의 삶과 다른, 아니 남과 다른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려 들고 그로부터 쾌감을 느낀다.  보통 사람들과 다르다는, 일종의 자기만족이라는 허상에 사로잡히는 것이다.  이는 바로 정치가가 바라는 바이다.

  어쩌면 가장 인간다운 삶이란 자기자신보다는 남을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는데 있는지 모른다.  이 세상의 많은 성자들이 내놓은 도덕적인 가치 중에서 가장 으뜸으로 치는 것이 바로 희생정신임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인간적인 모든 욕망을 억제하고 남을 위해 심신을 바치는 일이야말로 보통의 인간이 할 수 없는 일이다.  이러한 희생정신에는 차별의식이 개재될 수 없다.  남이 하지 못하는 일을 한다는 묘한 성취감도 없다.  단지 자신의 심신을 바쳐 남이 필요한 일을 할 수 있다는 소박한 의미에서의 헌신적인 삶의 태도만이 있을 뿐이다.

  한국미술협회 집행부가 새로 출범했다.  미협의 신임 이사장 및 집행부는 그 어느 때보다도 막중한 책임을 지고 있다.  미협을 전혀 새로운 미술인 단체로 개혁해야 하는 부담과 의무를 지고 있는 것이다.  어디나 탈이 많은 단체의 경우 새로운 집행부가 들어서면 거기에 소속된 회원들이 가지는 기대감은 이전보다 훨씬 크다.  이전의 집행부에 대한 실망을 일시에 보상받으려는 심리가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번 이사장 선거에 참여한 미술인들에게는 그런 보상심리가 적지 않으리라.  물론 이전과 다른 새로운 공약을 내걸었다고 할지라도 선거에 참여한 미술인 모두에게 골고루 돌아갈 수 있는 어떤 혜택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회원들이 한 표의 투표권을 행사하는 것은 미협 집행부가 진정한 미술인 전체의 공익을 위해서 존재하기를 바라는 열망에서다.  설령 회원 개개인 모두에게 어떤 혜택이 돌아가지 않을지언정 사회적으로 신뢰를 받는 단체에 소속되어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한 표의 의미는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단순히 미협 전체 회원의 권익을 도모하기를 바라는 이기적인 기대감 때문만은 아니라는 뜻이다. 

  그 동안 미협은 운영의 난맥상으로 인해 미술인의 화합은커녕 분열시키는데 앞장섰다는 비난을 면치 못했다.  회원들 상당수가 미협을 빠져 나와 또 다른 형태의 미술인 단체인 전업작가회를 만들었다던가, 미협 집행부를 불신한 나머지 또 하나의 집행부를 만드는 등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이어졌다.  그런가 하면 미술대전 운영위원 및 심사위원 선정과 관련한 금품수수 사실이 밝혀져 사회적인 물의를 빚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대다수의 미협 회원들은 자신이 회원이라는 사실에 자괴감에 빠지곤 했다.

  이런 불미스러운 일들이 일어나면 순수한 의미에서 동참한 회원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미술인 전체가 매도되기 십상이다.  예술가 단체도 세속적인 정치단체와 다를 바 없다고 보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참담한 일이 파행운영을 일삼는 미협 집행부에서 비롯되고 있다는데 문제가 있는 것이다.  이런 일들로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킬 때마다 적지 않은 미술인들은 차라리 미협이란 단체를 없애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미술은 예술이다.  예술은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예술가 스스로의 재능이나 취향 또는 의지에 의해 선택한 길이라고 할지라도 일반인들이 볼 때는 선택된 소수에 의한 숭고한 행위와 그 결과로 받아들인다.  예술가가 쟁이라는 이름으로 폄하되던 시절과 달리 오늘은 예술가가 사회적으로 존경받고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는 시대이다.  따라서 예술가는 사회로부터 존경받는 만큼 그에 상응한 대가를 사회에 내놓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세속적인 부와 명예에 현혹됨이 없이 오직 예술이라는 창작행위에 대한 순수한 열정을 불태울 수 있어야 함은 물론, 도덕적으로나 인격적으로도 모범이 되어야 한다. 

  예술가는 한 개인이기 전에 사회적인 공인이다.  예술적인 가치가 모든 물질적인 가치에 우선하는 것은 예술품은 다름 아닌 인격적인 생산물이기 때문이다.  그 인격적인 생산물을 창조해 내는 예술가의 존재가 각별하게 보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예술가가 공인의 입장이 되는 것은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에 근거한다.  기술에 앞서 인격적인 산물이어야 하는 예술은 모두가 공유하게 되는 사회적인 자산이자 가치인 셈이다.  그 예술을 생산해 내는 예술가가 사회적인 주요 인물이 되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처럼 사회의 중요한 위치에 존재하는 예술가 집단이 정치적인 목적과 결부된 소수의 개인적인 이익을 위해 술수와 파당 경쟁, 금품 수수 따위의 불합리하고 불건전하며 비윤리적이자 비도덕적인 일을 자행한다면 사회적으로 지탄받아 마땅하다.  이러한 행위는 예술가로서의 명예를 실추시킴과 동시에 예술 그 자체에 대한 미술애호가 및 일반인의 존경과 기대를 허무는 일에 다름 아니다.  예술가는 무엇으로 존재하는가.  그것은 바로 예술창작에 따른 정신 및 감성의 순수성이 아닌가.  그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예술의 본래적인 가치 즉, 아름다움과 숭고함을 잃어서는 안 된다.  아름다움과 숭고함은 사사로운 욕심에서 벗어나 창작이라는 고뇌의 시간 및 피를 깎는 노력, 그리고 고상한 정신이 깃들 수 있는 인격적인 완성에서 나오는 것이다. 

  새로 구성된 미협 집행부는 그야말로 미술협회 자체를 포함하여 미술인 전체에 대한 이미지가 쑥밭이 된 최악의 상황에서 출발한다.  더 이상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 데까지 추락한 미술인의 명예와 자존심 및 자긍심 위에서 치러진 선거였기에 그렇다.  그런 최악의 상황에서 출발하는 까닭에 그 어느 집행부보다도 새로운 각오가 있어야 한다.  적어도 미협의 발전 및 회원의 권익은 고사하고라도 실추된 명예를 회복시켜야 한다는 절대절명의 다짐이 필요한 것이다.  먼저 집행부는 승리에 도취되기에 앞서 과반수를 밑도는 득표수가 말하는 무언의 메시지를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즉, 반대표를 던진 과반수가 넘는 회원들을 한데 아우를 수 있는 대화합의 메시지가 필요하다.  그리고 미협은 매사에 회원을 위해 존재하는 단체임을 상기해야 한다.  그래야만 이전과 같은 분열을 막을 수 있을뿐더러 공약으로 내건 새로운 운영방안을 소신껏 밀고 나갈 수 있는 기틀을 확고히 다질 수 있다.  전체 회원이 신뢰하는 집행부로서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말이다.

  이번 선거를 일대혁명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것은 지역 회원들이 지역에서 출마한 입후보자를 선택했다는 데 있다.  이러한 결과는 중앙회원을 중심으로 구성된 미협이 얼마나 한심하게 운영되고 있었는가에 대한 지역 회원들의 결연한 심판이었다고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지역 미술인들 사이에 쌓인 미협에 대한 불신과 불만이 이번 선거의 판세를 판가름했다고 볼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새 집행부는 이번 선거가 그 어느 때보다도 과다한 선거비용이 들었을 것이라는 일반적인 지적을 모른 체 해서는 안 된다. 

  여기에서 새삼 이번 선거가 정말 깨끗하게 치러졌는지 여부를 문제삼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잘못은 스스로가 인정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런 준엄한 자기반성을 통해서 만이 궤도수정을 할 수 있는 용기가 나오는 까닭이다.  과정이 잘못되었다고 할지라도 무언가 미협을 개혁하고자 결연히 나섰다면 선거공약에서 명시돼 있듯이 과감한 행정쇄신을 통해 이 시대가 요구하는 미술인의 단체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사회단체든 국가든 그를 이끌어 가는 지도자의 지도력이 강력해야만 계획한 바를 실행에 옮길 수 있다.  만일 지도자의 의지가 약하고 실천의지가 미약하면 아무리 좋은 뜻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훌륭한 지도자로서의 면모를 보여줄 수가 없다.  따라서 논공행상 따위와 관련한 주변의 입김에 의지를 꺾여서는 안 된다.  강력한 지도력만이 주변의 입김을 차단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독재체제와 같은 방식을 용인하자는 것은 아니다.  공약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이사장의 확고한 신념과 그를 뒷받침할 수 있는 지도력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그렇다.  이제 미협은 필연적으로 새로운 시대의 소명에 따라야만 한다.  한마디로 미협은 이전과는 다른 길을 걷지 않으면 안 된다.  공약실천은 제쳐두고라도 실추된 미술인의 명예를 회복시키는 일이 무엇보다도 시급하다.  그리고 예술에 대한 미술인들의 순수한 열정을 되살려야 한다.  다시 말해 미술인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바꾸어줄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등 이미지 개선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래야만 미술인들이 새로운 기대감 속에서 예술가로서의 본연의 긍지와 자부심으로 창작열을 불태울 수 있을 것이다.  

  지금 미협 회원들은 물론, 미술인 전체 그리고 국민들은 새로운 미협의 출발을 조심스럽게 지켜보고 있다.  그 눈들을 무섭게 생각해야 한다.  따라서 미협을 이끄는 지도자로서의 이사장은 항시 맑게 깨어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명료한 사리분별력으로 미술계, 나아가 세상의 흐름을 짚을 수 있다.  진정으로 미협과 나아가 미술인을 위해 일하겠다면 성성한 눈으로 세상을 직시하고 헌신적인 자기희생정신으로 일관하기를 바란다.  독단에 빠져서도 안 되겠지만 주변의 요설에는 더욱 조심해야 한다.  그리하여 미협을 변화시킨 혁명가로, 그리고 의욕적인 일꾼 및 참다운 지도자상으로 남기를 기대한다. (신항섭)


<"미술신문" 2001년2월5일(제25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