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화집

나비 꿈 (42) - 태풍

펜보이 2007. 7. 30. 07:35
 


  태풍 颱風

 

  아주 무더운 남쪽 먼 바다에는 그 숫자를 헤아릴 수도 없을 만큼 많은 도깨비들이 살고 있었다. 도깨비들은 사람이 살고 있지 않은 작은 섬들에 뿔뿔이 흩어져서 살았다. 도깨비들의 하루하루 생활은 극히 단조로웠다. 그러다 보니 심심하기 짝이 없었다.

  원숭이가 좋아하는 잘 익은 바나나를 썩게 만들어 놓거나 짐승들이 마시러 오는 옹달샘을 썩은 물로 채워놓는 따위의 못된 짓만 일삼았다. 원숭이들은 도깨비들의 장난인줄도 모르고 있었다. 그러니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런 일도 하루 이틀이지 계속하다보면 싫증이 났다. 정말 도깨비들에게는 너무 재미없는 곳이었다.

  그러나 도깨비들에게도 나름대로 즐거운 일이 있었다. 날씨가 무더워지고 습기가 많아지면 도깨비들은 바다 한가운데서 청백으로 편을 갈라 편싸움을 하는 것이었다. 청 도깨비 편과 백 도깨비 편으로 나누어 몇 차례 싸운 뒤 많이 승리하는 편에서 그 해 왕을 뽑는 것이었다. 도깨비들의 편싸움은 일종의 왕을 뽑는 축제인 셈이었다.

  그 해도 왕을 뽑는 도깨비들의 편싸움이 시작됐다. 도깨비들의 편싸움은 단숨에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며칠이고 계속됐다. 축제가 시작되자 수많은 도깨비들이 일제히 춤을 추면서 밤낮을 쉬지 않고 놀았다. 도깨비들의 춤이 하도 요란스러운 탓에 바람이 일고 구름이 동요하면서 비를 만들었다. 비바람은 점점 커지고 있었다. 그리고 커다란 소용돌이를 일으키면서 작은 섬들을 넘어 북쪽방향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비바람은 나무를 쓰러뜨리고 사람들이 사는 마을에서는 지붕을 날리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고기잡이하는 작은 배들을 부숴 사람들이 바다에 빠져죽기도 했다. 도깨비들의 편싸움이 지나간 자리는 그야말로 쑥대밭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도깨비들은 편싸움에 취한 나머지 지상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조차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그렇게 소란스러운 편싸움은 해마다 되풀이되었다. 옥황상제조차 어쩔 도리가 없이 도깨비들의 편싸움을 속수무책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자칫 도깨비들이 사람들이 사는 마을로 터전을 옮기게라도 되면 더 난리법석일 터이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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