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화집

나비 꿈 (42) - 미풍

펜보이 2007. 8. 5. 08:14
 


  미풍 微風

 

  비파를 잘 치는 처녀가 있었다. 그 처녀는 어렸을 때부터 비파를 배웠는데 워낙 타고난 재능과 노력 덕분에 스무 살 남짓에 이미 세상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 만큼 유명해졌다. 처녀가 비파를 치는 모습을 보면 누구나 정신을 빼앗기고 말았다. 그 처녀가 만들어내는 음악소리는 사람뿐만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모든 동물들의 발길을 멈추게 했다.

  새들은 비파소리에 맞추어 노래하고 나비들은 춤을 추었다. 짐승들도 흥을 참지 못해 비파소리에 따라 고개를 흔들거나 다리로 장단을 맞추었다. 어디 그 뿐이랴. 갖가지 나무며 풀들은 처녀의 비파소리를 들으며 더욱 싱싱하게 자랐고 꽃들은 더욱 아름답게 피었다. 꽃들은 비파소리에 취한 나머지 향기를 나누어주는 일조차 잊은 채 넋을 놓고 있을 정도였다.

  처녀의 비파소리는 지상의 음악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아마도 천상의 음악이 저러하리라고 생각했다. 비파를 치는 처녀는 특히 손놀림이 아름다웠다. 비파를 치는 손가락은 춤추듯 했다. 부드럽고 날렵하며 때로는 폭풍이 몰아치듯 숨 가쁘게 움직이며 현을 뜯는 모양은 영락없는 춤추는 무희 같았다. 비파를 가슴에 세워 안고 눈을 지그시 감은 채 손가락을 움직여 비파를 치는 처녀의 모습을 보면 누구든지 꿈속에서 헤매는 듯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어느 날 처녀는 꽃이 가득한 정원에 나가 비파를 치고 있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흥에 겨운 처녀의 손놀림은 마치 춤을 추는 듯했다. 그 어떤 춤도 그처럼 부드럽고 잽싸며 매끄러운 몸놀림을 할 수는 없으리라고 생각될 정도였다. 그 손놀림을 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다 멎을 것 같은 지경이었다.

  점점 흥에 빠져드는 비파 치는 처녀의 손놀림은 이윽고 가벼운 바람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그 바람은 비파소리에 취한 꽃들을 살며시 깨워 온 세상으로 향기를 실어 날랐다. 꽃향기와 비파소리를 실은 바람은 아주 부드러운 손길로 온 세상의 나무며 풀이며 바위를 쓰다듬고 지나갔다. 꽃향기에 닿은 모든 동식물들은 마치 어머니의 손길과도 같은 부드러움에 취하고 말았다.

  엄마 등에서 칭얼대던 아기조차 꽃향기를 실어오는 처녀의 아름다운 비파소리에 취해 그만 곤한 잠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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