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오 이야기

오디오 이야기 (3) - 오디오라는 이름의 악기

펜보이 2007. 6. 25. 11:36
 

오디오라는 이름의 악기

 

신항섭(미술평론가)


인간을 만물의 영장이라고 한다. 창조적인 두뇌와 그를 뒷받침하는 자유로운 손의 기능을 소유함으로써 동물의 세계와 다른 문명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간은 불행하게도 그 능력에 비례하듯 무한정한 물질적인 소유욕을 가지게 되었다. 인간의 물질적인 소유욕은 삶에 필요한 것에 한하는 것이 아니다. 삶에 직접적으로 필요치 않은 것까지도 손에 넣으려 한다. 문제는 물질에 대한 소유욕은 결코 채워질 수 없다는 점이다. 아니, 소유욕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 소유욕이 통제되지 않는다는데 문제가 있다. 동물도 생식본능과 관련된 소유욕이 있기는 마찬가지이지만 인간의 그것과는 엄연히 다르다. 동물의 소유욕이란 단순히 생존의 문제와 관련된, 본능이 지시하는 먹거리를 확보하기 위한 욕구에 지나지 않는다. 이에 반해 인간의 소유욕에는 자기과시를 위한 허세가 따른다. 생식이나 생존의 범위를 넘어서는 탐욕적인 데가 있다는 뜻이다. 그러기에 인간은 소유욕의 노예가 되어 있다. 만물의 영장이라지만 그 인간을 지배하는 것은 스스로가 키우는 소유욕인 셈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오디오에 대한 소유욕구에도 허세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어쩌면 고가의 오디오를 소유하고 싶다는 욕구의 밑바닥에는 자기과시를 위한 허세가 깔려있는지도 모른다. 단순히 개인적인 취향의 범위를 넘어서서 음악에 대한 이해도 또는 고도의 청각 기능을 과시하고 싶은 욕망이 자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얘기다. 왜냐하면 음악의 본질과 고가의 오디오와는 별개의 문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음악을 감상하는 데는 보급형의 중저가의 오디오만으로도 크게 불편이 없는 까닭이다. 웬만한 중저가의 오디오는 소스가 가지고 있는 정보를 크게 열화시키지 않은 채 재생하여 우리 귀에 음악의 아름다움을 전달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좀더 나은 재생음을 얻기 위해 천문학적인 비용을 지불하는 것은 이미 순수한 의미에서 음악감상의 차원을 넘어서는 것이라고 볼 수 있기에 그렇다.

이른바 하이엔드라고 하는 고가의 오디오가 재생하는 음악을 들어보면 중저가의 보급형과는 확실히 차이가 있다. 무엇보다도 소스에 담긴 정보를 읽어내는 능력 면에서 월등한 실력을 가지고 있을뿐더러 연주 현장의 열기라든가, 악기간의 미묘한 뉘앙스 따위에서 뚜렷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차이가 천문학적인 금액을 요구하는 것이다. 보다 풍요로운 음악적인 해석을 통해 기대하는 실연의 감동을 얻을 수 있다면 하이엔드를 추구하는 것을 반드시 소비적으로만 볼 수는 없는 일이다. 그렇다.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어떻게든 소스가 가지고 있는, 아니 연주 현장의 생생함을 온몸으로 느끼고 싶다는 욕구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소유욕에도 분수가 있어야 한다. 여러 가지 면에서 자신의 형편에 맞아야 한다. 자신에게 주어진 조건을 넘어서는 고가의 하이엔드는 진정한 의미에서 음악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일과는 다른 문제이다. 한마디로 분수를 넘어서는 하이엔드는 물질적인 가치만을 중시하는 탐욕의 산물일 따름이다.

바이올린 중에서 최고의 작품으로 회자되고 있는 스트라디바리우스나 과르네리는 오디오로 말하자면 초고가의 하이엔드라고 할 수 있다. 악기 하나에 수십 억원에 달한다는 점에서 보면 초고가의 하이엔드보다도 훨씬 높은 가격이다. 어쨌든지 스트라디바리우스나 과르네리는 바이올리니스트에게는 현실적인 목표이자 꿈이다. 이들 명기를 소유하고 싶다는 욕구는 단순하다. 그만큼 아름다운 소리를 들려주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소리를 들려주는 악기로 연주하고 싶다는 욕구는 연주자에게는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렇지만 이들 명기는 소유하는 자에게 모두 똑 같은 소리를 들려주는 것은 아니다. 연주자의 능력에 따라 전혀 다른 소리가 될 수도 있다.

명기는 그를 소유한 사람의 능력에 의해 그 참다운 가치가 드러날 뿐이다. 아무리 아름다운 소리를 낼 수 있는 기능을 가지고 있는 악기라고 할지라도 그 잠재적인 기능을 최대한 끌어낼 수 있는 능력을 갖추지 못한 연주자에게는 그저 평범한 악기에 지나지 않을 따름이다. 그런데도 연주자라면 누구나 명기를 소유하고 싶어한다. 인간은 누구에게나 물질적인 소유욕이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능력과 상관없이 일단 최고의 명품을 소유하고 있다는 정신적인 포만감을 즐기고 싶어하는 것이다. 물론 명기로 연주하면 지금보다는 더 나은 연주를 들려줄 수 있지 않겠느냐는 소박한 희망도 있을 것이다.

명기는 그를 자유자재로 농락할 수 있는 최고의 기량을 가진 연주자에게만 그 능력을 이끌어 낼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설령 돈이 많아 스트라디바리우스를 소유했다고 할지라도 능력이 미치지 못하는 연주자에게는 감동적인 음악을 허락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명기는 스스로 선택적인 연주를 한다. 아무에게나 자신이 지닌 비의를 열지 않는 오만함이 있는 것이다. 기교적인 면에서 기량이 뛰어난 연주자일지라도 음악적인 이해가 무르익지 않으면 그로부터 명연주는 기대할 수 없다. 아름다운 연주 또는 아름다운 음악이란 연주자의 완숙한 기량과 더불어 타고난 미적 감각 및 성숙된 삶의 이해를 통해 실현되는 것이다.

어쩌다 신동이 나타나 세계음악계를 놀라게 하지만 음악적인 생명이 아주 짧은 경우가 대다수이다. 이는 손의 테크닉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따라서 평생을 훌륭한 연주자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기량향상은 물론 폭넓은 교양과 정신수양을 거듭해야 한다. 아름답고 감동적인 연주는 절정의 기교를 포함하여 삶에 대한 깊은 통찰에서 비롯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스트라디바리우스나 과르네리를 소유한 연주자들은 그 명기의 능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그러한 태도야말로 명기를 소유한 자로서의 의무인 것이다. 명기의 숨겨진 능력을 남김없이 끌어내지 못하는 연주자라면 소유할 자격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디오 메니어도 이와 다르지 않다.

오디오는 실연을 재생하는 전자기계장치이다. 오디오는 전기의 힘을 빌어 실연을 저장했다가 그를 재생하여 어느 때나 아름다운 음악을 들려주는 기능을 한다. 단적으로 말해 오디오는 과학의 생산물인 것이다. 실연은 잘 훈련된 연주자들이 악보에 따라 악기를 연주하는 것으로써 완성된다. 지극히 단순하다. 연주자와 악기 그리고 악보만 있으면 된다. 이에 반해 오디오는 전자기계장치를 조작하는 것으로써 실연과 같은 음악을 재생하여 들을 수 있다. 전자기계장치인 오디오는 아주 복잡한 회로를 통해 성립된다. 마치 거미줄 같은 회로망과 그를 연결하는 수많은 부품을 거쳐 아름다운 음악이 재생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정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복잡한 내부회로와는 달리 정작 오디오로 음악을 듣는 일은 아주 쉽다. 단지 오디오 패널에 있는 몇 가지 기능만을 조작하면 그뿐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반적인 음악재생 장치로서의 오디오는 정말 탓할 데 없을 만큼 훌륭하게 음악을 재생해준다. 100명에 달하는 연주자들이 함께 하는 대편성 오케스트라의 연주도 아주 간단한 조작만으로 바로 눈앞에서 보는 듯이 들을 수 있다. 생각해 보면 오디오는 참으로 기적인 것이다. 자기가 좋아하는 작곡가 또는 연주자의 곡을 어느 때든 원하는 곳에서 들을 수 있다는 일만큼 기적적인 일이 어디 또 있으랴.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오디오는 진정 기적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오디오는 악기와 마찬가지로 그를 만드는 사람에 따라 조금씩 다른 소리를 들려준다. 즉, 오디오를 통해 듣는 재생음악에도 질적인 차이가 있다는 말이다. 악기와 다름없이 오디오 또한 사람의 손에 의해 만들어지는 물건이라는 운명을 피할 수 없다. 그러기에 오디오는 만드는 사람의 감각 및 기술적인 습득 그리고 창조적인 두뇌에 따라 조금씩 다른 성향의 소리를 들려주게 된다. 전기적인 성능이 뛰어난 좋은 부품과 잘 짜여진 회로, 그리고 숙련된 기능공의 손으로 정성 들여 만드는 오디오는 보급형과는 엄연히 다른 고급한 소리를 들려주게 된다. 명기라는 이름의 악기가 들려주는 음악이 다르듯이 고급부품과 정성을 들인 오디오의 재생음악은 확실히 다르다. 고급한 음악을 들려주는 것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고급하다’는 의미는 실연의 흥취를 되살릴 수 있는 재생음악을 의미한다. 하지만 오디오 재생음악에서 ‘고급하다’는 의미는 다양한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재생음악의 수준을 평가하는 여러 가지 기준, 즉 정확한 음상, 다이내믹스, 공간감, 음악적인 뉘앙스, 정위감 따위가 실연에 가까운 이미지로 통합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고급한 소리란 어떠한 경우에라도 음악적인 왜곡이 없는 상태로 실연의 감흥을 재현하는 것이어야 한다. 우리가 말하는 하이엔드라는 고가의 오디오 장치는 바로 실연에 근접하는 재생음악을 들려주는 것을 목표로 한다. 따라서 실연에 가까워지려는 노력이란 바로 돈과 비례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오디오가 실연을 빙자한 전자기계장치에 불과하다고 할지라도 거기에는 내가 좋아하는 음악이 존재함으로써 기꺼이 고액을 지불하고 내 것으로 만들고자 한다. 어쩌면 오디오는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어느 때라도 짜증 없이 들려줄 수 있는 가장 충실한 하인이라는 점에서도 그렇다. 그러나 오디오는 생각처럼 간단한 물건이 아니다. 고가의 하이엔드라고 할지라도 거기에는 많은 변수가 있다. 바이올린이라는 악기의 경우에도 나무로 만든 공명통과 소리를 내는 금속 줄을 포함하여 지판대 줄감개 스크롤 줄받침 줄걸이 그리고 말총으로 만든 활 등 여러 가지 부품으로 조합된다. 이들 부품이 달라지면 소리 또한 달라지게 된다. 오디오도 이와 다르지 않다. 수십 가지에서 수백 가지에 달하는 부품들이 조합하여 완성되는 오디오는 부품의 숫자만큼 소리의 변수도 많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설령 동일한 회로일지라도 부품이 다르게 되면 다른 성향의 소리를 들려주게 된다. 여기에다가 만든 사람, 즉 메이커에 따라 다른 성향의 소리를 내게 된다. 문제는 또 있다. 이처럼 오디오의 성향도 천차만별이듯이 사람에 따라 음악적인 취향이 다르다. 그래서 아무리 고가의 오디오라고 할지라도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오디오로 재생음악을 듣는 일은 순전히 개인적인 취향에 따른 선택일 수밖에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일본 어느 평론가는 오디오로 음악을 재생하는 일을 ‘레코드 연주’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이는 단순히 수사적인 언어의 유희라고 일축할 수도 있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럴싸한 표현이다. 저마다 성향이 다른 오디오 기기 및 주변 액세서리를 어떻게 조합하느냐에 따라 음질의 차이, 즉 음악적인 표현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아무리 고가의 하이엔드라고 할지라도 음악적인 이해가 풍부하고 청각 기능이 예민한 메니어가 조합한 중저가 시스템보다 열악한 소리를 들려줄 수도 있는 것이다. 이는 순전히 메니어의 음악적인 소양 또는 재능이나 미적 감각에 따라 재생되는 음질 및 음악적인 수준이 달라진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오디오는 각기 다른 성향의 기기들을 조합하는 일에서부터 세팅방식 그리고 튜닝의 과정을 거치면서 최종적으로 자신이 원하는 재생음이 만들어지게 된다. 이 과정은 생각보다 아주 예민하고 까다로운 일이다. 실연에 가까운 재생음악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기기들의 음질적인 성향, 즉 특징을 정확히 파악하여 최적의 매칭을 실현해야 한다. 비싼 기기의 나열만으로 고급한 음질을 들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옳지 않다.

주어진 조건, 즉 예산의 범위 내에서 최적의 재생음악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우선 음악적인 소양 및 이해 그리고 실연에 대한 경험이 풍부해야 한다. 더불어 자신의 음악적인 취향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또한 오디오 기기에 대한 음질적인 특징을 충분히 숙지해야 한다. 이러한 기본적인 조건을 갖추어야만 매칭 및 세팅 그리고 튜닝의 과정에서 자신이 기대하는 재생음악을 만들어 갈 수 있는 것이다. 바꾸어 말해 오디오를 통해 아름다운 음악을 듣고자 하는 열망이 강하다면 기기를 선택하는데 앞서 먼저 자신의 감각 및 정신을 살찌워야 한다. 그런 연후에 실연의 경험을 통해 귀를 예민하게 만들어야 한다. 스스로가 먼저 준비되어 있지 않으면 결코 훌륭한 재생음악을 만들어낼 수 없을 것이다.

분수에 맞지 않는 소유욕은 탐욕일 뿐이다. 음악적인 이해도가 낮고 음악에 대한 애정이 부족한 이에게 고가의 하이엔드는 그저 자기과시용에 지나지 않는다. 단순히 고가의 기기를 소유하는 것으로 만족하려는 것은 결코 좋은 메니어의 태도라고 할 수 없다. 이 순간 고가의 오디오 기기를 소유하고픈 열망을 가지고 있는 메니어라면 한 번쯤 자신의 음반 콜렉션을 먼저 되살펴보자. 그리고 실연의 경험이 얼마나 있는지 되돌아보자. (신항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