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미술 현장

현대미술 현장 (5) - 김민정

펜보이 2009. 7. 9. 21:40

  

 

 

김민정의 작품세계

 

도시의 이미지 및 정서

 

신항섭(미술평론가)

 

예술가들의 창의적인 상상력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일반인들과 다른 타고난 미적 감수성의 표증이겠지만, 원천은 경험에 있다. 경험은 창작의 샘물과 같은 것이다. 지식이 경험을 선도한다고 생각하지만 창작에 관한 경험을 보조하는 선에서 머물 따름이다. 다시 말해 예술 창작은 경험치의 실제화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세상 구경을 많이 예술가의 상상력은 그렇지 못한 예술가와 엄연한 차이가 있다. 그렇다고 해서 경험만이 예술의 해결책이라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민정 작업을 보면서 경험이 창작과 관련해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거듭 확인하게 된다. 그의 작업은 불행(?)하게도 철저한 도시인의 일상적인 삶의 체험에서 비롯된다. 자연과 동떨어진 삭막한(?) 도시에서 태어나 자란 그로서는 외부세계인 자연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나 그리움이 존재하지 않는 모양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경험치는 순전히 자신이 태어나 자란 서울이라는 대도시에 국한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작품 또한 서울이 가지고 있는 도회지 정서를 벗어나지 않는다.

  

 

경험이란 의식하거나 의식하지 못하거나 실제로 겪은 일체의 사실에 대한 대응을 의미한다. 경험이란 본다는 것을 시작으로 하여, 보이는 것이 실재하는 상황에 신체의 모든 기능 정신이 직간접적으로 반응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경험은 신체적인 감각 기관이나 또는 정신과 같은 내부에 축적되기 마련이다. 예술적인 창의력이나 예술적인 상상력은 바로 축적된 경험을 토대로 발생하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그의 작업을 이해하는 단서는 의외로 쉽게 풀린다. 그의 작업은 그가 태어나고 성장한 강남의 테헤란로 인근에서 겪은 일상적인 경험 정서의 표출이다. 이처럼 단정적으로 말할 있는 것은 작품에서 있는 기하학적인 패턴이랑 도시의 상징적인 이미지인 빌딩과 연관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가지 크기가 다른 사각형의 이미지가 반복적으로 나열되는 조형적인 패턴을 통해 빌딩이나 아파트의 창문을 연상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고층 빌딩 사이에서 하늘을 보면 높다란 빌딩이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싶은 위기감에 사로잡히는 것은 도시 정서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의 감정이다. 하지만 도시에서 태어나 자란 이들에게는 자연 풍경에 익숙한 시골 출신과 다를 없이 건물 풍경에 익숙하기 마련이다. 인위적인 고층 빌딩이나 아파트에 익숙한 이들에게는 자연 풍경과 마찬가지로 도시 풍경도 아름답게 보인다. 그의 작품에서 있는 도시의 이미지란 결코 획일적이거나 삭막하게만 보이지는 않는다. 오히려 작품으로 변환된 도시의 이미지는 아름답게 표현된다.

그의 작업은 콘크리트와 철골 구조 그리고 유리 따위로 상징되는 빌딩 아파트 따위의 도시 풍경도 자연 풍경만큼 아름답다는 시각에서 출발한다. 특히 형형색색의 화려한 인위적인 조명으로 명멸하는 도시의 야경은 굳이 그의 예찬이 아니더라도 아름답다. 그는 빌딩 아파트 창문으로 비치는 도시의 불빛에서 조형적인 아름다움을 발견한 것이다. 물론 재현적인 작업을 하는 이들 가운데 도시의 풍경에 매료돼 야경만을 그리는 일들도 있다. 하지만 구체적인 형태를 버렸을 야경을 표현하는 것은 간단치 않다.

 

 

그는 현대적인 조형 언어 어법으로 도시의 풍경, 도시의 야경을 표현하는 방법을 강구하다가 한지를 이용하게 됐다. 육안으로도 쉽게 노출되는 한지의 섬유질에서 불빛의 이미지를 연상하게 것이다. 한지의 부드러움과 자연미를 도시의 이미지에 도입함으로써 콘크리트 유리 그리고 인위적인 조명의 차가움을 상쇄하거나 완화시킬 있다는 점에 착안한 셈이다. 그리하여 속으로 연작이 탄생하게 되었다.

그의 작업은 전체적으로 창의 이미지를 대신하는 기하학적인 패턴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사각형의 이미지가 화면 전체를 장악하는 가운데 일정한 크기의 찢어진 한지 조각이 기하학적인 패턴에 따라 붙여진다. 이렇게 진행되는 작업의 최종적인 이미지는 찢어진 한지 조각의 집합으로 보인다. 찢어진 한지 조각은 닥을 재료로 한지의 섬유질이 고스란히 노출되는 상태가 된다. 이렇듯이 한지의 섬유질에서 빛의 분산을 연상하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빛이 파장을 형성하면서 분산되는 현상을 찢어진 한지로 형용한 그의 작품은 실제의 빌딩 아파트 창의 형태와는 사뭇 다른 시각적인 이미지로 변환한다.

 

 

그가 이처럼 한지를 이용하는 것은 차가운 도시의 정서를 완화하면서도 신비적인 빛의 이미지를 구현하는 가장 효과적인 재료로 인식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지는 두께에 따라 투과성이 있어 안쪽을 밖으로 드러낸다는, 비친다는 빛의 이미지와 상통하는 점이 있음을 고려한 것이다. 따라서 초기에는 배면, , 화판에 먹을 칠하고 위에 기역자 문양의 한지를 찢어 붙이는 방식으로 작업했다. 일정한 크기로 종이를 찢어 붙이는 과정에서 차례, 차례 그리고 차례 겹쳐지는 횟수에 따라 종이의 투과성이 달라 농도의 차이에 따른 일정한 크기의 기역자 문양이 형성된다. 뿐만 아니라 일부 작품에서는 바탕의 수묵 색깔이 그대로 노출되어 검정의 기하학적인 선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들 작업은 감정은 억제되고 이성이 발호하는 상황이 된다. 논리적이고 이지적인 성향으로 기우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따분한 정도는 아니다. 감정의 기복이 보이지 않으나 같은 크기로 일정한 간격을 두고 찢어 붙이는 까닭에 운율이 형성되기에 이른다. 운율이란 존재성을 강조하는 빛의 파장과 같은 것인지 모른다. 결코 감정의 과잉을 용납하지 않는 차분히 전개되는 논리적인 화면의 구조가 그렇다.

  

 

작업이 진행되면서 한지를 일정한 크기로 찢어 붙인다는 단순한 행위가 반복되고, 결과적으로 자기 복제의 함정에 빠지게 된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된다. 그리하여 희미하게 선의 존재를 드러나게 한다든지, 담채로 바둑판 모양의 이미지를 만드는 따위의 방법을 통해 조형의 변주를 모색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한지를 기다랗게 찢어 붙이기도 하고, 옅은 물을 들인 색지와 소지 상태의 한지를 번갈아 붙이는 방식으로 바둑판 문양을 만들기도 한다. 그럼으로써 단순한 이미지의 반복이라는 지루함에서 벗어나 보다 다양한 표정을 얻게 된다.

이로 인해 비로소 작품 하나하나마다 분별이 가능한 형태(기하학적인) 만든다는 개념의 조형의 묘미를 즐기는 계기가 된다. 기하학적인 패턴에는 변함이 없으나, 찢어 붙이는 한지의 크기 형태를 달리하고 구성적인 이미지를 지향함으로써 풍부한 표정이 생기게 것이다. 그는 여기에서 걸음 진전하여 요철이 있는 한지를 이용하게 된다. 울퉁불퉁한 표면 질감을 살린 한지를 이용함에 따라 자체만으로 풍부한 표정이 주어진다. 이처럼 이미 만들어진 요철의 한지를 일정한 크기로 구획하여 다림질함으로써 기역자 문양의 커다란 사각형이 나타난다. 그처럼 구획된 사각형에 점과 같은 형태의 작은 한지를 연속적으로 찢어 붙이는가 하면, 어느 사각형은 완전히 채우거나 또는 부분적으로 비워두기도 한다.

 

 

이는 전형적인 조형의 변주 방식이다. 어쩌면 현대 회화에서 즐겨 쓰는 조형적인 변주는 묘사 기법 화풍은 변하지 않고 다만 소재 대상만 바뀌는 사실주의 회화 형식과 다르지 않다. 어느 면에서 현대 회화의 조형적인 변주는 보다 다양한 미적 감각을 실현할 있다는 점에서 훨씬 다채로운 이미지 전개가 가능하다.

그의 최근 작업에서 있듯이 소지로서의 배면, 바탕에 다양한 색채를 도입하여 이전과 다른 한층 경쾌하고 발랄한 표정을 얻고 있다. 초기의 금욕적인 먹색에서 벗어나 화려한 원색을 거침없이 받아들여 시각적인 즐거움을 도모하고 있다. 배면의 색채를 부분적으로 노출시키는 보다 공격적인 표현을 즐기는 것도 커다란 변화 가운데 하나다. 물론 배면의 색채가 강하고 화려함에 따라 찢어 붙이는 한지를 통해 투과된 색채는 완화되어 시각적인 혼란스러움은 없다. 다만 원색적인 색채조가 등장함으로써 생기를 촉발하여 감정적인 측면이 강조되는 경향이다.

 

 

그는 여기에서 이전까지 억제돼온 감정을 드러내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하고 있음을 있다. 원색적인 이미지에서는 도시의 화려한 네온의 불빛을 연상할 있지만, 이면에 존재하는 자신의 생활 감정의 변화로도 이해할 있다. 현실과 절연된 내면세계에 침잠하여 작업해온 이전의 은자적인 입장에서 탈피하여 활기 넘치는 현실로 시선을 돌린 결과인지 모른다. 강렬한 원색적인 이미지는 은닉된 도회지의 여러 가지 사회 현상, 도시의 이면에 대한 상징적인 표현인 셈이다. 명암이 엇갈리는 도시인의 삶의 모습이 원색적인 이미지로 또는 한지로 투과되는 중간 색조의 이미지로 표현되는 것이다. 그는 다만 그러한 도시의 이면 풍경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것을 지양하고 있을 따름이다.

뿐더러 최근 작업에서는 이전보다 한층 다양한 표정 만들기가 돋보인다. 여러 가지 형태 크기의 색채 이미지가 보이고, 색채를 이용한 굵은 기하학적인 선들이 등장한다. 또한 아주 세련된 중간 색조의 색지를 이용하여 고상한 색채 이미지의 조합 배열을 획책한다. 이는 원색적인 이미지와는 상반되는 세련미 넘치는 색채 감각으로서 정신적인 깊이를 은유한다. 단순히 도회지의 창문에 비치는 불빛의 형상화라고 하기에는 심오한 색채 배열이 아주 인상적인데, 이는 역시 미적 감각 미의식의 고조를 반영한 결과이다.

그의 조형적인 변주는 이후에도 다양한 이미지로 계속되리라 짐작할 있다. 내용도 중요하지만 그림이란 어차피 조형의 아름다움으로 귀결하기 마련이어서, 감수성이 예민한 그가 이러한 요구를 외면할 없다. 결코 길지 않은 시간 동안 작업이 진행돼온 과정을 보면 변화의 진폭이 작지 않다. 그는 이미 자신이 어떤 길로 가야 예감하고 있는지 모른다. 지금까지의 성과는 보다 광활한 조형의 변주로 가는 시작점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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