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시평

미술시평 (38) - 한국옻칠회화상 정립과 예술적 가치

펜보이 2009. 6. 27. 00:55
 

한국옻칠회화상 정립과 예술적 가치


신항섭(미술평론가)


세상이 급변하고 있다. 과거 100년 동안에 변화된 문명의 속도가 현대에는 10년 또는 그 이하의 기간으로 단축되고 있다. 이는 모두 컴퓨터가 주도하는 전자문명과 관련된 속도변화인데, 거기에 적응된 현대인은 속도감각에 무디어 있다. 컴퓨터가 출현한 후 인간의 의식 또한 아날로그 개념에서 디지털 개념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인간의 의식체계마저 바꾸어 놓는 놀라운 문명의 발달과정에서 오히려 정체하거나 퇴보하는 것이 있으니, 바로 예술이다.

산업혁명 이전만 하더라도 예술은 문명의 발달에서 가장 앞선 위치에 있었다. 기술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최상의 가치를 추구해온 예술이 문명의 중심축을 형성할 수 있었던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러나 손의 기술이 기계로 대체되는 산업사회로 넘어감에 따라 문명 발달의 축은 예술에서 산업분야로 넘어간다. 그 이후 예술은 가장 변화가 느린 집단으로 전락했다. 물론 19세기 말 인상파 회화가 등장한 이후부터 테크놀로지 아트에 이르기까지 지난 120여년의 예술 또한 변화속도란 측면에서 보면 놀랄만한 성과를 이루어냈다. 5년이 멀다하고 새로운 표현양식 및 형식을 만들어내면서 인간의 상상력이 허락하는 다양한 조형적인 변화를 모색해왔다.

특히 비디오아트로 상징되는 전자과학은 미술을 전혀 다른 차원으로 끌어올렸다. 산업에게 문명의 주도권을 넘겨준 이후 예술은 다시 문명발달의 전면으로 나설 수 있는 기회를 잡게 된 셈이다. 따라서 과학이 미술이 되는 상황을 목도하면서 잠시 놀랐지만, 이제는 그마저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됐다. 이러한 상황변화는 가히 예술의 혁명이라고 할 수 있는지 모른다. 신을 위주로 한 예술이 인간을 위한 예술로 방향이 바뀐 이래 진정한 예술의 혁명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온갖 형태의 현대미술이 난무하는 사이에 장르 간의 경계가 무너진 것은 물론이려니와, 예술과 기술의 차이마저 모호하게 되었다. 다시 말해 순수미술과 상업미술의 차이 또는 경계가 무너지는 상황으로 바뀌었다. 이제 순수미술로 분류되던 회화 및 조각 이외에도 사진 건축 공예 등 창조적인 아이디어 및 손의 기술이 요구되는 모든 분야를 예술로 인정하고 또 받아들이는 시대가 된 것이다. 특히 단순 기능으로 파악되던 전통공예에 대해서도 예술적인 가치를 인정하는 즉, 새로운 인식 및 평가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시대가 되었다.

이들 전통공예를 기능적인 산물로 파악했던 것은 육체적인 가치보다 정신적인 가치를 우위에 두는 유교적인 사상 및 사회풍습에 기인한다. 그러나 이제 과거의 유물인 고려청자나 분청사기 그리고 조선백자에 대해 예술품이 아니라고 시비를 걸 사람이 없다. 이는 미술품에 대한 인식의 변화, 즉 고도로 숙달된 손의 기술이 만들어내는 공예품에도 높은 예술성이 담긴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 구체적인 예의 하나이다.

전통공예인 나전칠기나 옻칠공예도 이제 새로운 시대를 맞아 그 본래적인 가치가 재평가될 수 있는 기회를 맞이하고 있다. 모든 예술이 그렇지만 초기에는 절대자 또는 종교적인 숭앙의 대상인 신을 향한 숭배의식을 위해 바쳐졌다. 그러다가 점차 절대 권력자를 위한 찬양의 수단이 되더니, 마침내 서민들의 생활에까지 미치게 되었다. 나전칠기 및 옻칠로 만들어진 생활기물이란 것도 초기에는 당연히 종교의식 또는 절대 권력자에게 바쳐졌을 것이다.

실제로 오늘 날 전하는 나전칠기 및 옻칠 기물은 그 높은 미적 가치를 통해 추측할 수 있듯이 종교의식에 쓰이거나 절대 권력자의 소유물이었을 것이다. 이들 작품은 수천 년 혹은 수백 년 동안 실생활에서 쓰이거나 땅에 묻혀 있었음에도 뛰어난 미적 가치는 전혀 손상되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그 형태적인 아름다움 및 높은 기술적인 완성도는 옛 장인들의 높은 심미안을 짐작케 한다. 그들의 창조적인 작업이 높은 미적 가치를 실현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예술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다. 그를 사용하는 절대 권력자 및 그 주변 권력의 하수인들은 거기에 구현된 마음을 사로잡는 아름다움에 감탄하면서도 그를 만든 장인의 존재여부는 안중에 두지 않았다.        

하지만 시대가 변해 옛 장인들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나전칠기 및 옻칠 기물은 일체의 선입관 및 고정관념을 떠나 오직 뛰어난 기술 및 조형감각의 산물임을 인정한다. 즉, 거기에 구현된 높은 미적 가치를 인정하는 허심탄회한 심미안의 소유자들을 만나게 된 것이다. 심미안의 소유자들은 옛 나전칠기 및 옻칠기물을 보면서 그 아름다움에 찬탄을 금치 못한다. 무명의 장인들이 평생을 갈고 닦은 기술로 완성한, 눈부시면서도 그윽한 아름다움과 마주하면서 진정한 예술혼을 실감하고 있다. 그러고 보면 옛 장인들은 이제야 지하에서 그나마 씁쓸한 웃음을 짓고 있을지 모른다.  

옻칠은 수천 년 동안 땅 속에 묻혀 있어도 변색되지 않는 반영구적인 재료이다. 캔버스나 종이보다 더 오랜 내구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그 어떤 재료로도 따를 수 없는 내구성은 보존성에 대한 의구심을 일거에 해소한다. 더구나 옛 기물에서 실현된 시각적인 깊이 및 고급한 느낌은 전통적인 생활기물이라는 한정된 영역에서 벗어나 회화적인 표현 욕구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어쩌면 통영옻칠미술관을 중심으로 <한국옻칠회화상>이라는 새로운 개념의 조형운동이 일어나고 있는 것도 시대적인 요구에 부응하는 것일 수 있다. 다시 말해 전통공예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현대적인 미적 감각에 부응하는 미술, 즉 새로운 장르의 조형예술을 제안하고 또 정립하기 위한 일련의 미술운동이다. 이는 옻칠회화라는 새로운 개념의 회화를 현대적인 미술작품으로 수용할 수 있는 시대적인 여건 및 태세가 갖추어짐으로써 가능한 자연스럽고도 당연한 반응이다.

옻칠은 전통 공예로서의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데다, 채색회화로서의 잠재적인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사실은 창조적인 예술가들을 자극하는 요인이 됐다. 명민한 미적 감수성을 지닌 예술가들은 나전칠기에서 볼 수 있듯이 옻칠을 사용하여 변형하거나 퇴색하지 않는 뛰어난 보존성에 주목한 것이다. 여기에다가 고급한 느낌, 즉 격조 높은 옻칠의 아름다움은 장식적인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는 점을 놓치지 않았다.

실제로 옻칠이 가지고 있는 장점은 순수미술과 상업미술, 전통미술과 현대미술, 순수회화와 장식회화라는 이분법적인 구분 및 경계가 허물어진 현대미술의 흐름에서 새로운 회화로서 부각될 수 있는 요소이다. 이미 오래 전부터 옻칠회화에 관심을 가져온 통영옻칠미술관 김성수관장을 비롯한 일부 작가들에 의해 부단히 그 가능성이 모색되기에 이른 것도 시대적인 상황이 무대를 만들어주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동안 옻칠이라는 재료를 이용한 옻칠회화가 미술계에서 주목받지 못한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옻칠회화라는 명칭조차 생소할뿐더러, 옻칠은 곧 공예라는 선입관이 장애가 되었다. 옻칠은 생활기물을 만드는데 쓰이는 일종의 장식기법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캔버스나 종이가 아닌 나무 위에 그림을 그리는 것은 목공예의 장식수법으로 간주돼온 것이다. 수백 년 전부터 뇌리에 깊이 새겨진 이와 같은 고정관념을 타파하기란 용이한 일이 아니다.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지 않고는 옻칠회화가 아무리 뛰어난 보존성 및 높은 품격, 그리고 화려한 장식미를 지니고 있다고 해도 사람들을 설득하기는 어렵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선 옻칠이라는 재료를 사용한 그림이 예술성을 확보하고 있다는 사회적인 인식의 통합이 선결되어야 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으로 제기된 것이 다름 아닌 직업적인 화가집단의 참여이다. 다시 말해 직업적인 화가집단이 직접 옻칠회화상 정립을 위해 참여함으로써 전통 공예의 틀을 벗어나 새로운 표현양식의 회화가 될 수 있다는 전제를 성립시킬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거꾸로 설령 장르간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을지언정 현실적으로는 여전히 순수미술과 상업미술 사이의 간극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따라서 옻칠에 대한 일반적인 선입관 및 고정관념의 타파는, 옻칠회화가 순수미술의 영역으로 편입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할 통과의례인지도 모른다. 그 하나의 구체적인 방법이 직업적인 화가집단의 참여임은 말할 나위도 없다. 전문적인 화가집단이 옻칠기법을 익힌 뒤 예술적인 표현, 즉 순수미술로서의 표현방법을 적용함으로써 공예품이라는 의구심을 해소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기존의 옻칠에서 그림이 장식적인 요소로만 받아들여졌던 점을 감안할 때 예술성 높은 순수회화의 도입이야말로 옻칠회화가 독립적인 회화장르가 될 수 있음을 뜻한다. 물론 옻칠이라는 재료적인 특성 및 기법은 기존의 회화와는 전혀 다른 조형적인 관점을 요구한다. 무엇보다도 표현기법 또는 표현방법에서 기존의 재료와는 다른 조형적인 사고가 요구된다. 나무판에 삼베를 입히고 그 위에 옻칠을 칠하고, 그림을 그려 넣은 뒤 또 옻칠을 칠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작업과정은 까다롭고 지루하다.

이로써 알 수 있듯이 옻칠이라는 재료적인 특성 및 기법은 기존의 회화와는 다른 조형언어 및 어법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기존의 회화작업에서 쓰이는 선염이나 옅은 터치와 같은 표현기법을 옻칠회화에서는 효과적으로 살릴 수 없다. 점질의 천연 수지로서의 특성을 가지고 있는데다가 검은 색깔이어서 투명성이 떨어진다. 그러기에 옻칠회화는 특수한 경우가 아니고는 일반적으로 검은색 바탕 위에 문양이나 그림을 그려 넣게 된다. 이렇듯이 바탕이 검다는 전제는 옻칠회화의 단점인 동시에 장점이기도 하다.

옻칠회화는 이로 인해 조형적인 사고 또한 그 재료가 요구하는 즉, 재료의 특성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방향으로 진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자면 일단 재료의 특성 및 표현기법 그리고 표현기술을 숙지하는 것이 순서다. 다시 말해 옻칠회화만이 표현할 수 있는 조형언어 및 어법을 특화시키는 방안이 강구되어야 한다. 이 문제는 일단 실제의 작업을 통해 재료 및 기법을 터득해 감과 동시 새로운 표현기법을 개발하는 방식으로 해결될 수 있다.

일본의 옻칠의 경우 금분이나 금박 따위의 금을 재료로 한 표현기법이 발달해 있다. 하지만 우리의 경우에는 전통적으로 익숙한 나전칠기 기법을 효과적으로 살리면 한국적인 옻칠화의 특색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옻칠이라는 재료적인 특성을 최대한 살리면서도 한국적인 옻칠회화상 정립을 위한, 양보할 수 없는 방법의 하나인 것이다. 옻칠회화는 처음부터 기존의 회화와는 확연히 다른 조형적인 특징을 확립해야 한다는 확고한 목표를 갖지 않으면 안 된다. 이는 옻칠회화가 새로운 회화로서의 자격을 획득하는 데 따른 필수적인 요건이다. 이와 같은 요건을 갖춤으로서 옻칠회화가 진정한 독립적인 회화의 한 장르로 자리 잡을 수 있는 것이다.

옻칠회화가 보편화되는 데는 장애물이 있다. 무엇보다도 우루시올이라는 성분은 피부 알레르기를 일으킨다는 점에서 접근하기 쉽지 않다. 뿐만 아니라 옻칠기술을 익히는 데는 많은 시간의 노력이 필요하다. 또한 옻칠을 칠하고 문지르고 또 칠하는 반복적인 행위에 따른 육체적인 노동과 시간 그리고 인내가 요구된다. 이로써 짐작할 수 있듯이 작품을 완성시키는 데는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단 일정한 수준의 기술적인 완성도에 도달하고 또 예술성이 확보되면 그에 상응한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 즉 고품격의 회화작품으로서의 예술성 및 상업적인 가치를 획득하게 되는 것이다.

<한국옻칠회화상>전에 참여하는 작가들은 짧은 기간 동안에 기초적인 기술을 익힘으로써 일단 새로운 개념의 회화로서의 예술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다. 물론 아직도 옻칠이라는 재료만의 특성을 살릴 수 있는 기법에 대한 숙지 및 연구가 진행되는 단계이므로 더 높은 수준에 이르는 데는 일정한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아울러 옻칠의 특성 및 기법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면서 옻칠 특유의 표현기법도 점차 다양하게 강구될 것이다. 즉, 옻칠이 요구하는, 옻칠만이 표현할 수 있는 최적 최상의 기법이 다양하게 개발됨으로써 여타 장르의 회화와 확연히 구별되는 조형세계를 확립하게 될 것이다.

이번 전시회에 참여하는 작가들의 작품은 비록 초보적인 단계를 넘어선 수준이지만 옻칠회화의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주는 데는 전혀 부족하지 않다. 사실적인 묘사로부터 추상적인 작업에 이르기까지 현재 한국미술계에서 진행되는 다양한 표현양식 및 경향의 작품세계를 함축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통해 옻칠회화가 기존의 회화양식을 그대로 수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옻칠 특유의 조형미를 관철할 수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기존의 회화장르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우미한 광택 및 화려한 발색이 주는 시각적인 이미지는 새로운 조형세계로서 손색없다.

다만 화가들이 옻칠회화를 접한 기간이 짧은 탓에 표현기법이란 측면에서는 아직 자유자재한 상태는 아니다. 이는 시간이 지나면서 저절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마다 다른 조형감각 및 색채감각 그리고 회화작품으로서의 완성도는 옻칠회화의 진면목을 알리는 데는 부족함이 없다. 비교적 짧은 기간에 이런 성과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작가들의 참여의지와 치열한 작가정신 그리고 옻칠회화에 대한 애정에 기인한다. 이에 덧붙여 새로운 회화장르를 만들어 간다는 자부심 또한 간과할 수 없다. 개척자적인 열정과 신념이 오늘과 같은 성과를 만들어낸 것이다.

<한국옻칠회화상>이라는 대전제를 충족시키기 위한 통영옻칠미술관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일련의 미술운동은 이제 시작단계에 불과하지만 머지않아 내외에 확고한 이미지를 심어줄 것으로 기대한다. 이번 전시회만으로도 그 무한한 가능성을 확인하는데 전혀 부족하지 않은 것이다. 옻칠회화에 대한 실질적인 연구 및 작품제작이 진행되면서 점차 기법적인 문제에서부터 옻칠에 적합한 최적의 이미지를 요약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간과할 수 없는 점은 기왕 옻칠회화가 전통미술에서 비롯된 만큼 한국전통회화의 전통을 이어감과 동시에 현대인의 미적 감각에 부응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또한 이웃 일본과 중국의 그것과는 분명히 다른 조형적인 특징을 확립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대미학을 연구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전통미학에도 관심을 기울여 한국적인 이미지의 옻칠회화상을 정립해야 한다. 그 하나의 방법으로 고유의 전통문양을 비롯하여 민화 및 수묵화 그리고 채색화 등 전통회화의 기법을 응용하는 것도 고려할 일이다. 지역적인 특색을 보편적인 가치로 승화시킬 때 곧 세계적인 것이 될 수 있는 까닭이다.

옻칠이라는 전통적인 기법은 기존의 회화와 다른 공예적인 특징이 있다. 이는 특유의 장점인 것이다. 이미 순수회화 분야에서는 나전칠기 기법을 부분적으로 채용하는 경우가 늘어가는 현실에서 볼 때 옻칠기법 또한 현대회화에 도입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본다. 이러한 추세에 비추어 옻칠회화에서도 기존의 회화가 가지고 있는 표현기법 및 이미지를 보다 적극적으로 도입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옻칠은 그 재료 및 기법에서 디자인적인 표현에 더욱 효과적일 수 있으므로 디자인적인 요소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이제 디자인적인 이미지를 상업적인 이미지로 치부하는 시대가 아니므로 오히려 다자인적인 요소를 강조함으로써 옻칠회화의 지평을 확장시킬 수 있을 것이다.  

옻칠회화는 일단 나무를 바탕으로 하는 작업이다. 이러한 특성을 살려 평면에만 한정하지 않고 입체로 표현영역을 확장해가는 노력도 필요하다. 다시 말해 부조형식은 물론이요, 입체작업을 병행하는 것이다. 옻칠을 사용한 다양한 생활기물 자체가 이미 입체이므로 순수조형으로서의 입체작품을 만드는 일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옻칠회화가 가지고 있는 특징은 벽면에만 걸리는 기존회화의 존재방식을 벗어나 바로 우리들의 일상적인 생활기물에 응용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는 옻칠회화 자체의 수요를 확충하는 실질적인 방법인 셈인데, 일상생활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인 접근방법이 될 수 있다. 옻칠회화가 아무리 뛰어난 예술성 및 장식성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실수요자들이나 미술애호가들의 마음을 사로잡지 않으면 안 된다. 따라서 일상적으로 접하는 친숙성을 효과적으로 이용함으로써 옻칠회화에 대한 선입관이나 고정관념을 불식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이 문제와 관련해 통영옻칠미술관에서는 이미 일상용도로 쓰이는 생활기물 및 액세서리를 상품화하여 보급하는데 노력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한국옻칠회화상 정립을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 작품과 프레임을 일체화함으로써 옻칠회화의 고유성을 강조하는 한편 고급화를 지향한다는 설정은 의미 있는 일이다. 실제로 프레임 작업은 고도의 미적 감각이 요구되는 분야임에도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전문적인 식견이 없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이와 같은 문제를 간파하고 통영옻칠미술관에서는 이미 옻칠회화의 고유성을 살리면서도 품위를 높이는 작품과 프레임의 일체화를 모색하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

다만 작품의 크기와 프레임과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의 하나는 비례관계이다. 다시 말해 작품의 크기에 따라 그에 적절한 크기의 프레임이 요구된다. 또한 그림의 색채이미지에 따라 프레임의 색깔도 달라져야 한다. 따라서 크기에 따른 비례와 색채 배열 및 조화가 전체적인 작품의 이미지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인식, 이를 해결하기 위한 연구 또한 다각도로 진행되어야 한다. 이 문제 역시 옻칠회화가 고급한 회화장르로서의 입지를 굳히는데 필요한 효과적인 수단이 될 것이다.

이상에서 살펴보았듯이 옻칠회화는 새로운 개념의 회화로서 무한한 잠재적인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제 시작단계이므로 할 일도 많고 또 갈 길도 멀다. 문제는 모든 새로운 표현양식의 미술이 그랬듯이 여기에 동조하고 참여하는 작가들이 늘어나고 사회적인 호응이 있어야 한다. 그러기까지에는 일차적으로 통영이라는 지역주민들의 높은 관심 및 후원이 있어야 한다. 한국 고유의 옻칠회화상이 사회적으로 공인되고 또 많은 미술애호가들이 고급한 회화로서 받아들이게 될 때 한국을 대표하는 회화의 하나로 확고히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결코 꿈이 아니다. 미구에 맞이하게 될 현실이다.


<이 글은 6월23일 통영시민문화회관에서 열린 "새로운 영역의 한국옻칠회화상 정립과 예술적 가치 전망" 세미나에 발표한 글입니다. 이번 세미나와 함께 6월23일부터 7월4일까지 통영시민문화회관 전시실에 이어 7월8일부터 8월20일까지 통영옻칠미술관에서 "한국옻칠회화상 특별전"이 열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