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의 길

명작의 길 (23) - 설경철

펜보이 2008. 3. 13. 20:38
 

 

 

설경철의 작품세계


잠재된 꿈과 욕망의 배출구


신항섭(미술평론가)


형태가 있는 그림은 그것이 어떤 표현양식을 취하든 우리들의 현실을 반영한다. 개인적인 취향이든 또는 기억이나 경험에 의해서든 그림에 반영되는 현실은 상상력을 확장시키는데 기능한다. 그림에는 현실과 다른 조형적인 공간해석이라는 특수한 기능이 있기에 그렇다. 조형적인 공간해석은 현실과 이상을 연결하는 매개 역할을 한다. 우리가 그림을 보며 감동하는 것은 이상적인 세계에 대한 꿈과 욕망을 구체화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설경철의 작품은 객관적인 현실인식에서 발단한다. 그러기에 그림에 등장하는 모든 형태는 현실에서 자리를 이동한 듯싶다. 그 만큼 객관적이고도 명료한 사실적인 형태묘사는 감상자의 시선을 압도하기 마련이다. 과연 그림인지 사진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만큼 정밀하고 섬세하게 묘사되고 있다는데 대한 경이로움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그림에 표현되는 형상은 비현실적인 상황으로 전개된다. 형태는 사실적이되 그 형태가 놓이는 공간적인 상황은 비현실적이다. 즉 물체가 바닥에 놓여 있는 것이 아니라, 마치 나비처럼 또는 부유하는 새의 깃털처럼 공중에 떠 있는 것이다.

이는 사실적인 공간개념을 무시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더구나 현실을 인지하는 거리감, 즉 입체적인 시각효과를 나타내는 원근법조차 개의치 않고 있다. 그러기에 그림에 등장하는 물체는 전후좌우상하라는 자연계의 물상의 존재방식으로부터 완전히 이탈하여, 무중력상태가 된다. 이 모든 상황의 전개는 현실적인 공간개념과는 상관없는 조형적인 상상의 산물일 따름이다. 이러한 조형어법을 우리는 초현실주의라고 말한다. 현실을 초월하는 존재방식으로 인해 사실적인 형상이 돌연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까닭이다.

 

 

실재하는 모습 그대로 보고 묘사한다는 것은 사실주의 정신에 합당하다. 그로부터 어떠한 식의 형태적인 재해석도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의 눈을 속일 수 있을 만큼 정밀하게 묘사되었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감동을 야기하기에 충분하다. 그의 작품은 형태묘사에 관한 한 실제와 허상(그림)을 혼동케 할 정도이다. 사진기술에 대한 식견 및 경험이 있는 우리로서는 그의 그림과 마주하면서 실제인가 사진인가를 확인하고 싶은 충동을 억제하지 못한다. 그의 작품이 의도하는 일차적인 목표는 바로 여기에 있다. 사실을 빙자한 일루전으로 시선을 사로잡겠다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 그 자신이 추구하는 조형적인 이념 및 사상 또는 철학을 말하겠다는 것인지 모른다.

그의 작업이 실제인지 허상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만큼 실제적인 것은 상당 부분 디지털프린팅의 효과일 수 있다. 무엇보다도 인쇄물인 책의 이미지가 너무나 사실적이기 때문인데, 실제의 책을 디지털카메라로 촬영해 컴퓨터 작업을 거쳐 캔버스에 프린트 한다. 그러고 나서 그 위에 다양한 소재들을 사진으로 착각할 만큼 세밀하게 묘사한다. 이와 같은 작업방식은 전자문명이 주도하는 우리들의 현실적인 삶의 환경변화를 가장 명료하고 명쾌하게 반영하는 것이다. 디지털 기술은 이미 현대미술에서 보편화된 예술적인 표현방법으로 채용, 다양하게 응용되고 있다.

 

 

전자과학이라는 이 시대의 첨단을 달리는 새로운 매체에 대한 관심 및 직접적인 도입은 시대감각을 선도하는 예술가로서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미 다다이즘이나 팝아트가 전개해온 다양한 형태의 레디메이드 활용에서 볼 수 있듯이 새로운 표현을 위한 과학적인 매체 또는 매재의 도입은 그 자체가 창의성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유행하는 신사실주의 작업 가운데 상당수의 작가들이 사진이라는 매체 기술을 원용하고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가 이용하는 디지털프린팅 기법은 시대정신을 구현하는 사실주의 미학에서 볼 때 시대상의 솔직하면서도 직설적인 반영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디지털프린팅 기술을 채용하는 그의 작품은 실제(실물)를 촬영한 이미지와 수작업, 즉 전통적인 묘사기법을 혼용함으로써 과학기술과 페인팅기술(그리기)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손의 기능 일부를 디지털기술로 대체함으로써 실제와 허상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드는 시각적인 효과를 거두고 있다. 어쩌면 그의 작품 앞에서 감탄하는 손의 기술이란 이미 과학적인 이미지를 뛰어 넘는 사실성에 대한 객관적인 인정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한마디로 그의 사실적인 묘사력은 카메라의 영역까지 침범하여 과학기술을 무력화시키는 데까지 이르렀다고 할 수도 있다.  

 

 

그의 작품에는 공통적인 시각적인 이미지가 존재한다. 책이나 악보 또는 공책(비어 있는 책)이라는 동일한 소재를 중심에 둔 채 그 주변 공간에 각종 현악기, 타이프라이터, 마이크, 타자기, 시계, 헌책, 붓, 종이학, 박제된 나비, 새, 토기, 오디오헤드폰 따위의 다양한 물체들의 이미지가 배치된다. 이들 소재들은 바닥에 놓여 있는 것이 아니라, 공중에 떠 있다. 물체로서의 질량을 거의 가지지 않는 듯이 책을 중심으로 하여 그 주변에 무중력상태로 떠 있는 것이다. 이런 존재방식은 의식의 자유로운 유영에 대한 인간의 잠재적인 욕망의 구체적인 현상이라고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허공을 날아다닌다는 것은 인간에게는 실현될 수 없는 꿈에 불과하다. 비록 인간의 신체적인 조건으로서야 그 꿈을 실현하기는 아직 이를지언정, 그의 작품에서는 다양한 물체들이 인간의 욕망을 대리하여 그 꿈에 도전하고 있다. 그 물체들이 우주공간을 유영하는 우주비행사들을 연상시키는 것도 우연은 아니다. 잠재적인 욕망의 배출구로서 그의 그림이 지시하는 메시지는 이렇듯이 우리의 미의식을 현실적인 공간으로부터 무한히 확장시키려는 데 있는지 모른다.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소재들 가운데는 책이나 악보 이외에 현악기와 책이 유난히 많다. 특히 악보와 현악기, 펼쳐진 책과 공중에 떠 있는 소품으로서의 책을 소재로 한 작품의 대다수는 실제의 음악과 문학이 조형적인 언어로 현현할 수 있음을 실증하려는 것인지 모른다. 추상적인 언어로서의 음악을 회화적으로 변환하는 방법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음계를 따라 연주되는 음악이 공중에 퍼져나가는 상황을 악기의 이미지로 대체하는 것이다. 또한 문학 역시 떠다니는 책의 이미지는 문자를 통해 그 내용이 전달되는 인쇄매체로서의 소통의 기능을 형상화한다. 즉, 소리의 전파, 문학적인 의미 전달을 회화적인 이미지로 바꾸어 놓은 것이다. 그런가 하면 조류도감을 배경으로 날아오르는 새의 연속적인 동작을 형상화하고 있는 작품도 있다.

 

 

이렇듯이 시간의 흐름에 따른 추상적인 언어로서의 음악의 전파, 생명체의 물리적인 활동상황을 실체화하듯이 보여주는 것은 평면적인 세계로서의 회화적인 공간개념을 뛰어넘으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그렇다. 그의 작업은 시간적이고 공간적이며 물리적인 제약을 벗어나 조형적인 상상의 세계를 마음껏 유영하는 데 있다. 뿐만 아니라, 연속적으로 펼쳐지는 책의 이미지는 시간의 연속성, 즉 행위가 발생하여 전개되는 과정을 파노라마처럼 보여준다. 이러한 일련의 작업은 인간의 지적취향, 즉 지적인 축적을 상징하는 책의 이미지를 통해 탐욕적인 인간의 지적 욕구를 은유한다. 

그의 작업에서 책을 감싸는 사진기(스튜디오 용 대형)의 프레임은 캔버스를 대체하는 듯싶은 시각적인 이미지를 전달한다. 실제(현실)의 상을 작은 필름 속에 압축하는 사진기술이나 축적된 지식을 활자매체를 이용하여 작은 책 속에 저장하는 인쇄술이나 다르지 않다. 이렇듯 과학적인 장비 및 기술에 대응하는 그의 신체적인 묘사력이 기술의 극점에 이르면 사진이나 인쇄물과 구분할 수 없게 된다. 이는 결과적으로 과학적인 기술과 신체를 이용한 손의 기능이 동일한 지점에서 일치된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그의 언어는 설명이 필요 없는 명백한 현실적인 물상들이다. 그 현실적인 물상들이 현실공간을 떠나 그가 제공하는 무중력의 조형공간으로 이동한다. 그 무중력의 공간을 유영하면서 전혀 새로운 의미로 재생산된다. 위에 열거한 소재들은 그가 지시하는 조형언어 및 어법에 일사분란하게 순응하면서 개체의 아름다움을 뽐낸다. 또한 크기나 모양이 다른 소재들이 한데 어우러지는 광경 속에서는 음악 또는 운문에 따르는 리듬과 풍요로운 화음을 연출한다. 그것은 마치 생체리듬과 같은 바로 살아 있는 유기적인 공간임을 명백히 하는 일이다. 공업생산품인 레디메이드뿐만 아니라, 이미 생명을 잃은 조류도감의 새나 박제된 나비가 부유하는 공간에서는 생의 리듬이 발생하는 듯싶다. 이런 시각적인 착시현상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것은 역시 실제를 방불케 하는 극렬한 사실적인 묘사력이 실제를 빙자할 수 있는 지경에 이른 결과이리라. 

 

 

그의 작품에서 소재들은 제각기 고유의 존재성을 침해받지 않으면서 현실과 초현실의 경계를 넘나드는 자유를 획득한다. 그 소재들이 획득한 자유란 바로 현실적인 세계에 두 발을 딛고 살아야만 하는, 상처받은 우리들의 의식 및 감정을 해방시키는 데 기능한다.

그의 작품은 현실과 비현실, 또는 현실과 초현실의 상관관계란 결국 동전의 앞뒤와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자각케 한다. 그림 속의 이미지는 현실에서는 사실적인 존재인 반면, 그림 속에서는 허구임을 안다. 그럼에도 우리의 의식은 그림 속의 정경 자체가 바로 현실로 치환될 수 있다는 환상의 끈을 놓지 않는다. 거기에는 우리의 의식 속에 잠재되어 있는 현상 또는 현실에서의 탈출, 즉 자유로운 꿈의 날개를 지닐 수 있다는 욕망과 믿음이 뒷받침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은 그런 잠재된 꿈과 욕망을 한껏 부추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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