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시평

미술시평 (19) - 현대미술의 현재 시각

펜보이 2007. 8. 25. 10:02
 

  현대미술의 현재 시각



  새 천년이 불과 반년 남짓 앞으로 다가왔다.  한 세기가 바뀌는 것도 큰 일이지만 새로운 천년이 시작되는 것은 더욱 큰 일이다.  어쩌면 일 천년만에 오는 새 천년을 직접 맞이할 수 있다는 것은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개인적으로 행운이라면 행운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새로운 천년이 시작된다고 해서 우리 개인의 생활이 갑자기 달라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다만 하루를 24시간 단위로 설정하여 삶의 유한성을 의식케 함으로써 계획적인 생활을 할 수 있는데, 한 세기라든가, 밀레니엄, 즉 새 천년의 주기는 보다 넓은 관점에서 세상을 경영하는데 필요한 하나의 기준점이 되고 있을 뿐이다.

  새로운 천년이라는 세월이 우리에게는 그다지 실감나는 시간단위는 아니다.  그보다는 한 세기 즉, 일 백년을 단위로 하는 시간이 훨씬 이해가 쉽다.  20세기를 줄곧 살아온 우리에게는 20세기가 끝나고 21세기가 온다는 사실이야말로 피부에 와 닿는 이해관계로 인식되는 것이다.

  특히 미술계의 입장에서 볼 때 21세기는 과연 어떠한 일들이 일어날지 큰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새 천년은 반년 남짓밖에 남지 않았지만 21세기는 아직 1년 반 정도가 남아 있다.  그런데 일년 반이라는 이 기간이 왜 그다지도 멀리 생각되는 것일까.  아무래도 ‘20세기말’과 ‘21세기’라는 단어가 우리 생활에 갑자기 증가하기 시작한 90년대 초 이후 거의 10년 가까이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기 때문이리라.

  20세기 막바지에 다다르고 있는 지금 세계 미술계는 세기말 징후를 보이고 있다.  한 세기가 끝나가고 있다는 허탈감과 함께, 21세기가 되면 무언가 지금보다는 새롭고 나은 일이 있겠지, 하는 막연한 기대감 속에서 그저 하릴없이 시간만 죽이는 무기력함에 빠져 있다.  이러한 현상은 전후 현대미술을 주도해온 뉴욕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80년대 말까지만 해도 항시 새로운 영웅들의 등장으로 소란스럽고도 활기가 넘치는 뉴욕이었건만 20세기 후반을 풍미했던 거장들이 세상을 뜨면서 그 공백을 메울 수 있는 대체 인물이 등장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뉴욕이 이러하니 그를 좇던 여타 국가들이라고 해서 다를 것이 없다.  뉴욕은 MOMA(미국현대미술관)를 중심으로 구겐하임미술관, 휘트니미술관, 디아센터 등 미술관에서 여전히 중요 전시를 통해 세계미술계에 뉴스를 던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전과 같은 활기를 느끼기 어렵다.  새로운 미술운동의 진원지로서의 20세기 후반을 장식한 뉴욕의 영광스러운 발자취도 세기말의 황혼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최근 수년이래 실험적인 현대미술의 메카 역할을 해온 소호가 점차 활력을 잃어가고 있는 현상과도 무관하지 않다.  치솟는 건물 임대료를 견디다 못해 첼시로 하나 둘 빠져나가는 화랑들의 숫자가 늘면서 소호의 역사도 20세기를 끝으로 그 막을 내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예측을 낳고 있을 정도이다.

  물류 창고 건물이 들어찬 첼시는 싼 건물 임대료와 함께 하나의 화랑 타운을 형성하기에 아주 좋은 입지적인 조건을 갖추고 있다.  자동차 통행량이 많지 않아 주차문제도 복잡하지 않고 한가하게 거닐면서 다양한 화랑을 섭렵할 수 있는 아주 매력적인 새로운 화랑가로 정착하고 있다.  건물 하나에 화랑과 작가들의 아틀리에가 함께 하는 것도 첼시의 또다른 매력이다.  창작의 현장과 화랑이 하나의 공간에 위치함으로써 창작과 전시가 동시에 이루어지는 장점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새로운 화랑가로서의 첼시는 21세기를 준비하는 단계일 뿐이다.  환경이 달라지기는 했으나 화랑 벽면을 장식하고 있는 그림들은 그렇지 못했다.  도무지 새로운 형태의 미술이 등장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20세기 후반 숨가쁘게 달려온 현대미술의 그 다양한 언어 및 어법을 쏟아내던 현장으로서의 열기를 느낄 수 없었다.  미국현대미술의 생산지로서의 실험적인 미술을 위주로 하던 화랑들도 이제는 아이디어의 고갈을 면치 못하고 있는 것이다.  어디에서도 더 이상 새로운 미술은 찾아볼 수 없다.  다만 한가지 주목할 만한 현상은 사진작업이 수년이래 눈에 띠게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눈에 보이는 실체를 그대로 옮겨오는 형태보다는 의도적으로 연출한 사진들이 많아지고 있는 것이 하나의 변화라면 변화일 수 있었다.

  이와 함께 추상미술이 점차 퇴조하고 있는 것도 뉴욕 화랑가에서 감지되는 현상의 하나이다.  그렇다고 해서 전통적인 순수조형의 구상미술로 되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형상을 회복하되 이전까지의 작업과는 다른 방법을 강구하려는 몸부림으로 풀이할 수 있다.  이러한 일련의 노력이 아직은 그 어떤 구체적인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형상 미술이 부쩍 많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새로운 이념을 만들어내지 못한 채 개개인의 창의성에 맡기고 있을 뿐이었다.  뉴욕 현대미술 현장에서 읽을 수 있는 기류는 집단적인 형태의 미술운동보다는 개개인의 창의성을 기대하는 분위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승세를 타고 있는 미국경기의 호조의 영향으로 일부 작가들의 작업은 거래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상업적인 화랑들이 밀집해 있는 57번가도 첼시와 분위기가 비슷했다.  예약을 알리는 붉은 딱지를 심심찮게 볼 수 있는 것이다.  새로운 작가가 나오지 않는 상황에서 소호나 첼시 화랑을 통해 검증된 작가들의 작품전은 57번가 쪽에서 지속적으로 열리고 있는 상태였다.  물론 썩 좋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런 대로 작품이 팔리고 있는 것이다.  우후죽순처럼 이곳저곳 화랑에서 새로운 영웅들이 태어날 때의 분위기와는 판이하다는 것이 현지 한국작가들의 견해이다.  한마디로 이념부재의 상황에서 헤매고 있음을 말해 준다.  그러나 구겐하임미술관이 새 천년을 시작하면서 백남준전으로 꾸민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많다.  과학과 미술의 만남으로 상징되는 비디오 아트가 새 천년 서두를 장식한다는 것은 21세기의 미술이 가야할 방향을 시사하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지 세기말에 다다른 지금의 뉴욕 미술계는 정체상태에 놓여 있다.  20세기 후반의 영웅들을 반추하는 것으로 시간을 메우고 있는 것이다. 

  파리는 어떤가.  파리 역시 유럽을 대표하는 현대미술의 본거지로서의 역할을 다하려는 막연한 사명감으로 세기말을 보내고 있는 분위기였다.  세계 현대미술을 뉴욕과 양분하고 있다고 자부하는 파리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는 느낌이었다.  뉴욕이 새로운 실험미술의 메카로서의 책무를 다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파리 또한 다를 바 없다.  그러나 뉴욕은 국가경제의 호황에 힘입어 작품거래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할 수 없다.  이에 비하면 파리는 궁색하게만 느껴진다.  실험적인 작업을 위주로 하는 화랑의 전시회에서 붉은 딱지를 찾아보는 일은 쉽지 않다.  상업화랑들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한마디로 작품이 팔리지 않는 파리의 화랑가 모습인 것이다.

  작품 판매가 모든 상황을 말해주는 것은 아닐지라도 판매는 미술활동의 활성화 여부를 가늠하는 척도는 될 수 있다.  단적으로 말해 파리 미술계는 유럽을 대표하는 미술중심지로서의 역할에 힘이 부치는 모습이다.  90년대 들어와 유럽 현대미술의 중심지가 독일로 이동하는 것이 아니냐고 조심스럽게 점치는 사람들이 아니더라도 파리는 새로운 실험적인 미술운동을 떠받칠만한 경제적인 능력에 대해 의심을 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실제로 일부 재능 있는 작가들이 생활에 지쳐 견디다 못한 나머지 뉴욕으로 떠나야 한다는 유혹을 떨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파리는 꿈이 있고 재능 있는 젊은 미술가들에게는 분명히 매력적인 곳이지만 이들의 창작욕구를 채워주기에는 이미 시스템이 낡아버렸는지 모른다. 

  그러나 파리 미술계가 안고 있는 문제는 다른데 있는지 모른다.  전통을 중시하는 보수적인 태도로 말미암아 재능 있는 젊은 미술가들의 열정과 욕구를 채워주지 못하고 있다는 인식이다.  아무리 재능 있는 작가라고 할지라도 파리에서 명성을 얻고 작품을 한 두점이라도 팔려면 적어도 20-30년은 기다려야만 한다.  한마디로 천재성을 발견하고 그를 키워주는 시스템을 갖고 있지 못한 것이다.  기다리는 사이에 천재적인 영감은 증발하고 만다.  결과적으로 파리가 만들어내는 작가는 저절로 나이가 들어 스스로 유명해지는 그런 작가뿐이다.

  어쩌면 이처럼 파리 미술계가 활력을 잃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현대미술의 상징적인  존재로서의 퐁피두센터가 수리를 하고 있는 현실과 관계 있는지도 모른다.  퐁피두센터가   건설된 지 10년도 못되어 전면적인 보수작업을 하는 현실을 보면서 정작 보수가 필요한 곳은 파리가 고집하고 있는 미술계의 구조적인 문제 즉, 낡은 시스템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천재를 알아보고 그 천재성을 빠른 시간 안에 개화시켜주든지, 아니면 미술시장이라도 활성화시켜 미술계에 활력을 불어넣어야 한다.  이 두 가지 모두를 놓치고 있는 현실에서 파리의 미래는 없다고 단언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이에 비하면 거의 60년 동안이나 사회주의 이념에 갇혀 있던 러시아의 현실은 차라리 보다 희망적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자유시장경제를 도입한지 10년만에 국가경제의 파탄으로 미술계의 상황이 아주 나빠졌다고는 하지만 작가 개개인의 창작에 대한 열기만큼은 뉴욕이나 파리보다 앞서 있다.  개방 이후 개인적인 상업화랑이 급증하면서 미술품의 상업화를 서둘렀던 모스크바의 최근 상황은 국가경제에 비례하듯 힘겨운 처지에 놓여있다.  문을 닫았거나 개점 휴업상태인 화랑이 점차 늘어가고 있다.  그런데도 중앙미술센터라든가, 중앙예술가의 집 등 대규모 미술전시장을 중심으로 전시회는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한 가지 재미있는 현상은 개별적인 상업화랑을 찾는 발길이 현저하게 줄어든 반면에 미술관이라든가, 중앙예술가의 집 등 대규모 전시장은 여전히 사람들로 붐빈다는 점이다.  물론 일부 인기작가들의 경우에는 작품이 팔려나가기도 한다.  러시아 경제가 모라토리움을 선언할 지경에까지 이르렀다고는 하지만 신흥 재벌들의 돈주머니는 마르지 않았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면 이해하기 어렵지 않은 현상이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작품의 판매와 상관없이 젊은 작가들을 중심으로 창작열기는 뜨겁기만 하다. 

  러시아 미술시장에서 중요 고객중의 한 부류는 신흥재벌 이외에 외국 화상 및 관광객들이다.  이들에게는 가격대비 작품 수준을 비교할 때 러시아 미술은 충분히 매력적인 상품일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개방 이후 일부 재능 있는 작가들은 국내보다도 외국에서 전시회를 갖는 횟수가 오히려 많을 정도이다.  그만큼 러시아 작가들의 작품은 품질을 보증 받고 있는 것이다.  러시아는 세계 미술시장의 입장에서 볼 때 열린 시장인 동시에 자원이 무궁무진한 곳이다.  그렇다고 해서 러시아 현대미술이 서구 시장에 생각처럼 싼 가격에 팔려나가는 것도 아니다.  러시아의 평균 임금 수준을 생각하면 오히려 과대평가하고 있는지 모른다. 

  러시아의 현대미술은 개방 이후 한동안 서구적인 추상에 흠뻑 빠져 있었다.  그러다가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과거 1910-1920년대 러시아 아방가르드의 전통에 대한 자각과 함께 맹목적인 서구 지향적인 관점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길을 모색하는 기운이 뚜렷하다.  이처럼 순수추상이 크게 줄어들고 있는 현상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그것은 아무래도 민족미술에 대한 자긍심과 함께 예술의 본질로 회귀하려는 움직임으로밖에 이해할 수 없다.  250년 가까운 아카데미 전통을 자랑하는 러시아 미술의 뿌리를 생각하게 만드는 현상인 것이다.

추상작업을 하더라도 납득할 있는 작품이 되어 나오는 것을 보면 러시아 현대미술의 미래를 낙관해도 좋으리라는 판단이다.  어느 면에서 러시아 미술은 21세기 세계미술에 대한 하나의 화두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러시아와 유사한 경험을 가지고 있는 중국미술 역시 전환기에 놓여 있다.  금세기 초 아방가르드 운동을 통해 추상미술을 선도한 러시아와는 다른 입장이지만 같은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강령으로 받아들였던 중국미술계 또한 개방 이후 일부 진취적인 사고를 지닌 젊은 작가들에 의해 추상미술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금세기가 저물어 가는 상황에서도 중국의 추상미술은 여전히 뜨겁게 타오르지 못하고 있다.  ‘만만디’라는 중국인 특유의 기질 탓일까, 추상미술에 대한 관심과 열의는 생각처럼 높지 않다. 

  이러한 분위기는 아마도 전통미술에 대한 확고한 신념 때문인지도 모른다.  사실 중국은 서구미술이라는 미술양식에 대응하는 동양미술의 중심 축으로서의 위치에 있다.  적어도 중국인들은 서양에 서구미술이 있다면 동양에는 중국미술이 있다는 자긍심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탈리아인 카스틸리오네에 의해 서구미술이 유입된지도 거의 3백년 가까이 되었지만 중국화의 그늘에 가려 그렇게 활발하지는 못한 상태이다.  그런데다가 개방 이전까지 서구미술은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종속시킴으로써 그나마 반세기 정토 후퇴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지난 2월 베이징 중국미술관에서는 중국이 낳은 세계적인 추상화가 자오 우키의 전시회가 열렸다.  어찌 보면 자오 우키의 전시회가 열린 것은 아주 늦은 편이다.  여기에서도 중국인의 기질을 읽을 수 있는 것이다.  유럽이나 미국에서 좀 뜬다싶으면 경력이나 나이에 상관없이 다투어 모셔다가 법석을 떠는 한국의 풍조와는 대조적인 셈이다.  자오 우키의 세계는 중국 작가들에게 많은 것은 시사하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자오 우키의 작품은 표현양식은 서구의 추상표현주의를 따랐지만 그 내용에서는 철저히 중국적인 정서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야말로 중국의 젊은 미술가들에게는 하나의 좋은 지침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중국의 국화는 양화와 다름없이 추상적인 양식을 받아들이는데 여전히 소극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일부 서구로 유학한 작가들이 귀국해서 추상미술을 선도하는 입장이지만 중국미술이 진을 치고 있는 상황에서 설자리는 여전히 좁아 보인다.  자연을 대상으로 하건 또는 개인적인 사유에 의해서건 형상을 떠난 그림이란 생각해본 일조차 없는 중국인들에게 추상미술은 그처럼 간단히 이해될 수 있는 양식이 아닌지 모른다.

  중국에서는 아직 상업화랑이 극소수에 그치고 있다.  따라서 미술계의 전체적인 시스템이 서구식으로 바뀌는데는 일정한 시간이 필요하리라는 판단이다.  개방 직후 화교들이 중국에 들어가면서 한동안 커다란 미술시장이 형성되었다.  그러나 90년대 후반에 이르면서 이들의 발길이 완전히 끊어진 상태이다.  일부 작가들이 잠시 큰돈을 손에 쥘 수 있었던 일도 이제는 하나의 신화가 되고 있을 뿐이다.  중국경제가 지속적으로 고도의 성장을 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농촌인구의 대도시 유입이 급격히 증가하면서 실업이 크게 발생하는 등 단기 경제전망은 그렇게 밝아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경제적인 상황은 현대미술이 활성화되는 데 장애가 될 것이 틀림없다.

 

<월간 아트코리아 1999년 5월호 : 필자는 지난 해(1998년) 말부터 금년 4월초까지 모스크바, 상트 페테르부르그, 상하이, 베이징, 뉴욕, 파리의 미술계를 돌아보고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