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의 길

명작의 길(48) - 최재영

펜보이 2011. 6. 5. 14:41

 

 

 

최재영의 작품세계

 

세상을 밝히는 자연미와 어린이의 순수성

 

신항섭(미술평론가)

 

 

누구에게나 선망의 대상이 있기 마련이다. 선망의 대상이란 스스로가 이루지 못하는 꿈과 희망과 욕망을 대신하는 존재이다. 그 존재가 가지고 있는 특별한 능력을 통해 대리체험을 함으로써 욕망이 해소된다. 이는 불완전한 존재일 수밖에 없는 인간에게 필요한 욕망의 탈출구가 되는 셈이다. 화가에게도 선망의 대상이 있다. 화가의 경우 그 대상은 작품의 주인공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그 선망의 대상을 통해 현실과 이상을 하나로 엮는 조형적인 욕망을 풀어내는 것이다.

최재영의 작업에서는 영화 주인공 수퍼맨이 등장한다. 초능력의 소유자 수퍼맨은 선을 상징하는 캐릭터로서 특히 공상과 환상의 세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어린이들에게는 절대적인 선망의 대상이다. 수퍼맨을 작업의 주인공으로 채택한 것은 보편적인 현대인들의 욕망을 대신해주는 상징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수퍼맨은 단순히 선망의 대상이기에 앞서 현대문명이 추구하는 이상적인 존재, 즉 시공을 초월하는 자유자재한 능력의 상징체인 것이다. 이는 최첨단의 전자과학이 추구하는 이상에 일치되는 캐릭터로서 시대상을 반영하는 상징성을 지닌다.

 

 

아직 수퍼맨이 현실화한 것은 아니나, 과학문명의 발전 속도로 보아 미구에 우리 눈앞에 나타날 수 있으리라 기대된다. 이렇듯이 자유롭게 하늘을 날아다니며 악을 물리친다는, 인간의 잠재된 욕망을 대신할 수 있는 수퍼맨이야말로 이 시대의 상징으로 손색없다. 그러나 현대문명의 눈부신 발전 속도는 오히려 다른 측면에서 위기감을 불러일으킨다. 초능력을 지닌 인간이 현실화되는 것은 인류의 오랜 욕망 및 이상의 현현인 반면에 그 초능력이 자연을 파괴하는 과학문명의 소산이라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그의 작가적인 시각은 인류문명의 발달과 비례하는 자연환경의 파괴를 경고한다. 정의를 상징하는 수퍼맨의 초능력을 인류의 미래가 달린 자연환경을 보존하는 데 이용하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이다. 수퍼맨에게 대자연의 파수꾼으로서의 역할을 맡기자는 생각은 순수한 어린이적인 발상이다. 과학으로 만들어진 로봇과 같은 인간이 아니라 자연의 지킴이라는 구원의 상징으로 제시되는 것이다. 이는 파괴되는 자연과 그에 따른 인간의 미래를 우려하는 작가적인 시각을 말해준다. 자연에 대한 관심 및 성찰을 유도하는 일이야말로 시대를 선도하는 예술가적인 사명임을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작업에 등장하는 또 하나의 캐릭터는 인형이다. 수퍼맨이 등장하기 이전의 인형을 소재로 하는 일련의 작업은 문명화된 도시, 즉 획일적이고 인공적이며 인위적인 질서를 기반으로 하는 도시문명에 대한 경고적인 메시지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 생명이 없는 인형은 차가운 도시문명 및 그 사회질서를 반영하는 상징적인 존재로 인식된다. 하지만 해맑은 눈을 지닌 인형의 표정과 모양은 순수함 그 자체이다. 천진무구한 어린이의 친구로서 존재하는 인형은 꿈과 사랑과 희망을 전하는 메신저이다.

어린이나 다름없는 등가물로서의 인형은 자연의 질서에 상반하는 도시문명에 대한 일종의 구원의 메시지인 셈이다. 어린이는 자신과 닮은 인형을 통해 세상과의 소통방식을 배우고 상상력을 키우며 정서적인 안정을 얻는다. 그의 작업에 등장하는 인형은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시계를 보며, 수퍼맨으로 변신하는 어린이의 모습이다. 어린이는 순수의 원형이다. 어린이로 표현되는 인형이 수퍼맨이 되고, 수퍼맨은 다시 평범한 일상의 어린이로 변신하는 조형적인 변이가 이루어진다.

 

 

이로써 짐작할 수 있듯이 수퍼맨이나 인형은 비현실적인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인간을 대신할 수 있는 인격체가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점진적인 변화는 그가 추구하는 조형적인 이상이 어디에 있는지를 암시한다. 실제로 차갑고 획일적인 질서를 강요하는, 현대문명의 상징인 대도시는 역설적으로 자연에 대한 소중함을 일깨워주고 인간의 귀소본능을 자극한다. 비자연적이고 비인간적인 삶의 환경을 조성하는 도시는 그 자체가 인간을 속박하는 거대한 수용소나 다름없다. 그러기에 그는 인형과 수퍼맨 그리고 어린이를 통해 인간의 본성을 일깨워주는 원초적인 자연성의 회복이야말로 도시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해법임을 역설한다.

그렇다. 이렇듯이 인형이나 어린이의 순수한 시각이야말로 예술의 참다운 목적과 일치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는 인간의 정신 및 감정을 순화시키는 기능을 지닌 예술의 순기능을 중시한다. 그러기에 그의 작업은 소재는 물론이려니와 제재 그리고 이미지에 이르기까지 밝고 맑으며 순연한 아름다움을 구현하는데 전적으로 동의한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예술의 기능인 감정의 정화를 맛보게 하는 것이다. 심미적인 시각에 의해 정제되고 정화된 시간 및 공간을 창조하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투명하리만치 맑고 부드럽고 온화한 시각적인 이미지는 감정을 순화시킨다. 순화되고 정화된 감정이야말로 가장 자연에 가까운 모습이다. 예술이야말로 원초적인 인간의 모습으로 회귀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될 수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와 같은 시각적인 이미지 및 정서를 표현하는 데는 그만의 조형적인 해석과 기술이 동원된다. 무엇보다도 사물을 명료하게 표현하는 사실적인 묘사력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는 오랜 노력에 의해 정련된 기술과 더불어 정확한 눈, 그리고 타고난 비례감각의 소산이다. 사물을 정확히 재현한다는 것은 화가로서의 제일의 덕목이다. 자유로운 조형적인 상상은 다름 아닌 능수능란한 손의 기능에 의해 보조되기에 그렇다. 그는 사실의 재현에 그치지 않고 조형적인 아름다움, 즉 자의적인 해석에 의한 형태미를 탐색하는데 심혈을 기울인다. 거기에는 심미적인 관점이 반영된다.

어쩌면 그의 작품에서 느끼는 부드럽고 온화하며 편안한 감정은 다름 아닌 순연한 시각적인 이미지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거칠지 않고, 공격적이지 않으며, 정서를 해치지 않는 묘사기법 및 색채이미지가 그와 같은 시각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그는 유채와 아크릴 작업을 병행한다. 어느 쪽이든 곱고 부드러우며 은은한 그림의 피부 및 색조는 평안하게 느껴진다. 더구나 그 색채이미지는 밝고 따스하며 고요한 정서적인 특징을 보여준다.

 

 

도시를 배경으로 하는, 일련의 인형을 소재로 하는 작업에서도 차갑지 않고 되레 따스하다. 이는 역시 맑고 밝고 화사한 중간색조의 색채이미지에 기인한다. 원시림을 배경으로 하는 최근의 작업에서 색채이미지는 더욱 밝고 경쾌하다. 시각적인 즐거움이 커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가 보여주는 원시적인 자연의 이미지는 순수 그 자체이다. 시선을 불편하게 만드는 이미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초록의 숲과 나무 그리고 형형색색의 꽃들과 이름 모를 풀들이 어우러지는 자연의 이미지는 그대로 지상낙원이다.

원시림은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는 무공해의 자연이다. 따라서 순수라는 측면에서 자연과 동격인 어린이가 이어폰을 귀에 꽂고 있는 모습은 문명세계와의 단절이 아닌 소통의 필요성을 의미한다. 자연과 문명의 도시는 별개의 공간이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공유의 공간이라는 시각이다. 이 두 가지 측면의 세계를 하나로 매개하는 것은 순수성의 원형인 어린이인 것이다. 그러나 그 아름다운 숲에도 두려움의 대상인 검은 표범이나 뱀과 같은 존재가 함께 한다. 이는 자연의 양면성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경계의 대상으로서 시각적인 긴장을 유발하려는 조형적인 장치이다.

 

 

예술이 궁극적으로 팍팍한 경쟁적인 구도로 가는 인간 삶을 보다 풍요롭고 느슨한 정서로 바꾸어 놓은데 기능한다면 그의 작업은 이와 같은 요구에 충실히 부응한다. 그의 작업이 단순한 시각적인 아름다움에 그치지 않는 사회적인 메시지를 지님으로써 호소력 및 설득력이 강한 것도 우연은 아니다.

 

<최재영전은 6월8일부터 14일까지 서울 인사동 인사아트센터 1층 전시장에서 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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