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과 가까이 하기

미술과 가까이 하기 (1) - 미술의 '문외한'

펜보이 2007. 7. 15. 12:54

미술의 '문외한'

 

미술평론가로 일하다 보니까, 어떤 자리에서건 미술에 관한 화제가 나오게 되고, 으례 한마디 부탁을 받는다. 이런 자리에서 질문하는 사람들은 대다수가 "미술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라서(어떤 이는 무뢰한이라고도 말한다)..."라고 전제한다.  미술에 관해 전혀 모르니까 어떤 우문을 던지더라도 양해해 달라는 뜻이리라. 이런 식의 전제는 미술뿐만 아니라 다른 전문분야에 대해 얘기할 때도 마찬가지다. 전문가가 앞에 있으니 섣불리 말했다가는 본전 못 찾는 것은 고사하고라도 무식이 탄로나면 창피한 노릇이다 싶어 아예 까발리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인지 모른다. 아니면 "나는 무식하니까 어떤 질문이라도 웃지 말라"는 공격적인 심리의 발로일 수도 있다.

이런 식으로 말하는 사람들의 속내를 들여다보면, 정말 미술에 관해 이렇다 지식이 없는 경우와 얼마간 알고 있긴하나 전문가와 대적할 수준은 아니니 음부터 솔직해지겠다는 경우, 그리고 정말 미술에 관심이 많고 전문적인 지식을 갖추었으면서도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은 채 어느 순간에 슬며시 본색을 드러내는 경우가 있다.

세상에 어느 분야에나 능통한 사람은 많지 않다. 특히 사회가 점점 세분화돼 가는 현실에서 자기 전문 분야 하나에서도 진정한 실력자가 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새로운 지식 및 정보는 아무리 뛰어난 머리를 가졌다고 하더라도 다 소화해 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고 해서 자기 분야에만 관심을 가질 뿐 타분야에 대해 무관심한 것도 경계해야 될 일이다.

세계가 지구촌화 돼 가고 있는 오늘, 교통의 발달에 따라 급변하는 생활환경은 좀 더 다양한 분야에 대한 지식과 경험을 요구한다. 따라서 다양한 민족 및 국민과의 접촉이 빈번해짐에 따라 문화시민으로서의 보다 매끄러운 대인관계의 필요성은 더욱 절실해진다. 이럴 때 만남을 좀 더 부드럽게 이끌어 가기 위해서는 공통의 화제가 필요하다. 국가와 민족 언어를 초월하여 누구나 함께 나눌 수 있는 공통의 화제가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공통의 화제가 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문화와 예술이다.

문화와 예술은 개개인의 재능과 노력뿐만 아니라, 민족의 정서를 토대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적어도 문화예술에는 절대우위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다. 비교개념이 있을지언정 내것 만이 최고라는 식의 우위개념이 자리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기에 어떤 경우에라도 다툼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물론 개개인의 미적 감각이나 지식으로서 판단하는 데서 오는 자기만의 견해를 피력할 수는 있다. 하지만 '내 생각이 옳고 네 생각은 틀리다'는 식의 이분법적인 논리를 적용할 수 없는 것이 예술이다.

그러기에 예술에 관한 화제는 어떤 형태의 만남이건 간에 자연스럽고 친밀한 분위기를 이끌어 가게 된다. 한마디로 사교하는 데 최적의 화제인 셈이다. 그렇다고 해서 예술이 단순히 사교술의 하나로써 이용될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현대인의 덕목으로서 예술에 대한 지식 및 이해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현대 지식으로서 '미술에 관해 문외한'이라는 표현은 어떤 시각에서든지 보기 좋은 모양새가 아니다. 설령 미술에 관한 지식이 전혀 없을 라도 그 같은 사실을 스스로 드러낼 필요는 없다.  만일 미술에 관해 평소 궁금해 하는 것이 있으면 솔직하게 물어보는 것이 좋다. 어차피 자기 분야가 아니므로 어떤 우문이라도 전문가 앞에서는 결코 창피한 일이 아니다.

미술평론가라고 해서 모든 질문에 만족할 만한 답을 내놓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비전문 분야인 데가 그 방면에 식견이 없다고 하여 '문외한'이라는 전제를 깔고 질문하는 것은 좋은 접근방식이 아니다. 나쁘게 생각하면 이런 태도는 상대를 당혹하게 만들 뿐더러, 자칫 도전적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는 까닭이다.

지식인으로서 또는 교양인으로서의 덕목인 문화예술에 관한 기본적인 소양을 갖추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조금의 관심 및시간을 만드는 것으로써 해결할 수 있는 일이다. 공통의 화제를 이끌어 가는 데 보조를 맞출 수 있을 정도의 수준을 갖추면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또는 취미가 없다고 해서 문화예술을 멀리해서는 촌사람 취급을 받기 십상이다. 현대인의 세련된 사교, 매끄러운 비지니스는 문화 예술의 소양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이다. (신항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