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시평

미술시평 (57) - 현대회화의 보고, 민화의 반격

펜보이 2010. 9. 10. 16:46

  

현대회화의 보고, 민화의 반격

 

신항섭(미술평론가)

 

 

전통회화에 대한 위기론이 확산되는 상황과는 달리 전통회화를 배우는 되레 인구는 증가하고 있다. 다양한 형태의 문화센터 또는 미술대학 및 지역사회 문화단체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사회교육 차원의 전통회화 학습의 기회는 점차 많아지고 있다. 전문가가 아닌 취미생활의 일환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전통회화의 학습은 그 시간이 축적되면서 결과적으로 전문적인 집단으로 성장하는 단초가 되고 있다. 그러고 보면 전통회화에 대한 최근의 관심 및 배움에 대한 열기를 아마추어리즘적인 시각에만 국한시킬 수 없는 사안임을 알 수 있다.

어쨌거나 전통회화에 대한 관심의 증가 및 확산은 바람직한 일이다. 사회교육의 일환인 전통회화 교육이 비록 전통적인 기법 및 화풍을 답습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고 할지언정 전통회화의 계승과 발전이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튼튼한 버팀목일 수 있다. 다시 말해 전통회화가 화단의 관심사로부터 멀어져 가는 현실에서 볼 때 전통회화의 역습이라고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전통회화가 계승 발전하기 위해서는 이를 향수하는 인구가 증가하거나 최소한 줄어들지는 않아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사회교육 차원의 전통회화 교육 열기는 튼튼한 지원군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지역사회 및 각 문화센터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민화에 대한 교육은 전통회화에 대한 중요성 및 그 가치를 재평가하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실제로 중요 도시별로 민화연구 모임이 결성되고 매년 정기발표회를 갖는 등 화단활동의 폭을 넓혀가고 있는 추세이다. 실제로 민화를 배우는 인구는 일반적인 예상보다도 훨씬 많다. 대다수가 여성들이고 그 가운데 주부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현저히 높다. 여성들이 많다는 것은 예술분야 사회교육의 전반적인 현상이기도 하다. 가정을 지키던 주부들이 자녀가 대학에 들어간 이후 자녀교육 및 가사에서 벗어나 자기만의 시간을 갖고자 하는 욕망과 무관하지 않다.

이렇듯이 사회교육을 통해 그림공부를 시작하는 경우 대체로 학창시절 한 때는 예술가가 되는 꿈을 꾸던 사람들이 많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붓을 놓아야만 했던 아픈 과거를 보상받고자 다시 예술가의 꿈에 도전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이들의 교육 열기는 의외로 높다. 개중에는 치열하게 작업에 매진함으로써 단기간에 기초적인 역량을 갖추게 된다. 그러고 나서 각종 공모전이나 그룹전에 참여하는가 하면 개인전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렇게 시작해 마침내 미술시장에서 어엿한 전문가 대접을 받는 예도 적지 않다.

문인화를 비롯하여 수묵화, 채색화, 민화 등 전통회화는 다른 장르에 비해 접근하기가 쉽다는 점에서 인기가 높다. 이들 장르는 재료비가 적게 들기도 하지만 기초만 익히면 혼자서도 계속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기에 각자의 노력에 따라 짧은 기간에 전문가적인 수준에 도달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러한 실질적인 성과는 전통회화를 공부하는 예비화가들에게 큰 꿈을 키울 수 있는 동기와 자신감을 주게 된다.

어쨌거나 서구미학이 범람하는 상황에서도 전통회화가 그 명맥을 이어갈 수 있는 것은 이들 사회교육을 통해 그림공부를 시작한 예비화가들 덕분인지 모른다. 미술대학에서 전통회화 학과가 폐지되거나 흡수되는 심각한 상황에서 이들은 든든한 후원군인 셈이다. 이들 전통회화를 공부하는 인구가 점차 증가하다보면 이들 가운데서도 훌륭한 작가가 나올 수 있을 것이다. 독자적인 조형세계를 전개하기 위해서는 시간과 노력 그리고 타고난 조형감각이 뒤따라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전통회화가 가지고 있는 잠재적인 가치에 대한 재인식이다. 단순히 전통회화의 맥을 이어가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서구적인 현대회화가 찾아내지 못한 무한한 조형적인 가능성을 끄집어내는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정작 전통회화 작가들조차도 이러한 노력이 미진하다. 전통회화 속에 담긴 무한한 가능성을 깨닫지 못한 채 서구미학만을 맹신하고 있는 것이다. 마치 보물을 집에 두고도 이웃집 곳간만을 기웃거리는 형국이다.

그러기에 전통회화야말로 현대회화의 보고임에도 불구하고 그 가치를 바로 보지 못하거나 아예 관심조차 두지 않는다. 오직 서구미학 쪽에만 시선을 고정시킨 채 감나무 밑에서 감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따름이다. 이는 전통회화가 서구회화보다 열등하다는 인식에 기인한다. 서구미학이 대세를 이루고, 서구미술이 미술시장을 지배한다고 해서 그 가치가 우월하다는 인식은 사대주의에 지나지 않는다. 서구미학을 무턱대고 추종해봤자 결과적으로 아류에 그칠 뿐, 그를 극복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서구작가들이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한국 전통회화를 한국작가들보다 더 잘 그릴 수 없는 이치와 같다.

그럴 때마다 박생광의 존재를 돌이켜보지 않을 수 없다. 그는 비교대상이 없을 만큼 파격적인 작품을 통해 전통적인 가치의 중요성을 일깨워주었다. 고구려 벽화를 비롯하여 단청과 불화, 민화, 풍속화, 무속화 등 전통적인 회화는 물론이려니와 설화와 전설 민간신앙, 풍속, 역사적인 인물, 고전문학, 역사, 철학 등을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전통회화의 지평을 무한히 확장해놓았다. 적어도 그 앞에는 금기사항이 존재하지 않았다. 소재 및 제재가 무엇이든지 그림으로 만들어내는 탁월한 조형감각을 발휘함으로써 전통적인 가치야말로 회화의 무궁한 보고임을 실증한 것이다. 특히 현란한 원색적인 색채로 점철하는 만년의 작품들은 회화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파격과 자유의 상징이었다. 무엇보다도 채색화에 대한 선입관을 불식시킴으로써 전통적인 채색화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직접적인 동기를 부여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된다.

이로써 알 수 있듯이 전통회화는 방향타를 잃고 있는 한국현대회화의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통회화의 중요성을 간과하고 있는 실정이다. 박생광이 펼쳐놓은 전통회화의 조형세계는 현대작가들이 금과옥조로 삼아야 할 진정한 조형의 금맥이라고 할 수 있다. 박생광은 전통회화에서 무엇을 어떻게 현대회화에 응용할 것인지를 명백히 보여주고 있다. 다시 말해 그의 작품세계는 방법론의 다채로운 제시라고 할 수 있는지 모른다. 그가 펼쳐놓은 조형세계 그 한 자락을 잡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독자적인 조형언어 및 어법을 만들어갈 수 있다.

전통회화인 민화만 해도 그렇다. 박생광의 작품에서도 찾아볼 수 있듯이 민화의 자유로운 형식은 현대회화에 필적한다. 민화가 가지고 있는 해학, 풍자, 은유, 상징, 기복, 벽사 등 그 내용은 물론이거니와 비정형의 다채로운 조형언어 및 어법이야말로 현대미학에 견주어도 전혀 촌스럽다. 오히려 세련미가 넘친다. 보는 시각에 따라 또는 해석에 따라 민화의 가치는 전통회화로서의 영역을 넘어 현대회화의 영역으로 거침없이 진입하는 것이다. 현대미학의 관점에서 민화를 볼 때 그보다 더 현대적일 수 없다.

현실적인 공간감을 무시한 자유로운 형태의 배치 및 구도와 더불어 평면적인 해석, 그리고 비정형의 형태해석은 이미 현대미학 그 자체인 것이다. 뿐만 아니라 문자를 회화적인 이미지로 변환하는 놀라운 창의성은 현대미학의 가치를 훨씬 뛰어넘는 것이다. 더구나 단순명쾌한 형식과 함께 그 속에 담긴 내용은 인간 삶 속에서 발생하는 희로애락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보고 즐기는 단순한 감상의 차원이 아니라, 그림이 생활의 일부가 되는 실용성은 민화가 가지고 있는 또 다른 매력이다.

최근 민화에 대한 관심은 물론 민화를 배우는 사람들이 크게 증가하고 있는 현실에 고무된 나머지 한국미술협회에 별도의 민화 분과를 설치하려는 노력이 전개되고 있다고 한다. 미협에 민화 분과가 설치되는 것은 상징적인 의미가 크다. 서민들의 애환을 담은 생활화로서 폄하돼온 민화가 이제야말로 정격 회화의 한 장르로서의 위상을 확립하게 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계획대로 미협 내에 민화분과가 설치되면 민화인구가 급증할 것은 물론 화단에서의 입지 또한 크게 달라질 것이다. 단순히 서민들의 생활화, 즉 실용화라는 오랜 선입관에서 탈피, 전통회화로서 당당히 자기주장을 할 수 있겠기에 말이다.

민화를 공부하는 예비화가들에게 민화는 무엇일까. 적어도 이들로서는 민화로 생계를 꾸려나가겠다는, 즉 화가가 되어 그림으로 생활해야겠다는 꿈에 사로잡히는 일은 없을 것이다. 단지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욕망에 이끌려 붓을 들게 되었을 뿐이다. 그러기에 미술시장에서 인기가 없는 민화를 선택한 것이리라. 이러한 동기야말로 그림에 대한 순수한 열정의 발로이다. 어쩌면 민화인구가 증가하고 있는 현상도 이처럼 작품판매에 대한 부담감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장르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고서야 팔리지 않는 전통회화, 즉 미술시장에서 인기 없는 민화를 굳이 선택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미술신문 제440호(2010년8월호)에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