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수유꽃이 필 때마다
함동선
둥둥둥 둥둥둥 북소리에
마음을 빼앗긴 사람을 찾아
산수유꽃이 필 때마다 나비가 되었는데
그 사람 알던 이도 떠나고
또 떠나고
연초록 잎이 아가의 손처럼 커가는데
갸름한 얼굴 둥근 눈썹
아래로 뜬 눈 다문 입
깊이 파인 보조개가
낮게 드리운 구름 속에 나타났다가
이내 멀어지더니
다시 구름 속에 묻히는데
바람이었으니 어디고 머물 자리도 없을건데
옛날의 편지 펴보니
‘먼 곳에는 그리움이 있어요’ 하는 한 마디가
둥둥둥 둥둥둥 북소리로 울려오는데
산수유 꽃더러 봄의 전령이라고 이름한다. 가장 이른 봄소식을 가져온대서 붙인 말이다. 실제로 산수유 꽃은 봄에게 바톤을 주고 냉큼 물러나기를 주저하며 미적거리는 겨울에게 한 계절이 끝났음을 알리는 확실한 전문이다. 어느 핸가 춘천에 간 일이 있었는데 도청에 오르는 계단 옆으로 헐벗은 가지 끝에 금싸라기 같은 산수유 꽃이 촘촘히 박혀 있었다. 바짝 다가가서 보니 막 꽃망울을 터뜨리려는 참이었다. 아니, 성급한 녀석들을 벌써 하나 둘씩 꽃망울을 벙그려 놓고 아직 차가운 기운이 가시지 않은 바깥 세상을 염탐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 앙징스러운 꽃망울을 좀더 크게 보려고 눈을 바짝 들이댔다. 그런데 그 순간 산수유 꽃 주변에서 번지는 상큼한 봄기운을 시샘하기라도 하듯 느닷없이 싸락눈이 내리는 것이었다. 마치 금싸라기 같은 산수유 꽃은 움찔했고 나도 뒷목으로 뛰어드는 차가운 싸락눈에 몸을 움츠렸다. 무더기로 내리는 싸락눈은 금세 금싸라기 같은 산수유 꽃을 내 시야에서 걷어내고 마는 것이었다.
화가네 마을들은 이른봄이면 한바탕 법석인다. 경기도 이천이나 전남의 산동마을로 봄맞이 가기 위해서이다. 화구를 들쳐 메고 산수유마을을 향해 줄줄이 집을 나서는 화가들의 행렬은 장관이다. 산수유마을에는 갑자기 부산해지고 이곳저곳에 펼쳐진 캔버스에는 노란 꽃물이 번진다. 캔버스의 노란 꽃물은 머리 위에서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만개한 산수유 꽃보다도 더 짙기 마련이다. 마음까지 온통 산수유 꽃물이 든 어떤 화가는 아예 물감 채로 처바르기도 한다. 산수유 꽃의 희롱에 취한 탓이다.
함동선 시인의 “산수유꽃이 필 때마다”는 이런 봄 풍경과는 달리 사적인 공간을 노래한다. 사적인 공간은 시인 자신의 추억과 결부되어 있음은 물론이다. 그 추억이란 잠자고 있는 듯하다가도 산수유 꽃이 필 때마다 속앓이처럼 도지곤 한다. 잔잔한 리듬을 타던 심장의 박동이 돌연 쿵쿵대는 것이다. 하지만 쿵쿵대는 시인의 가슴속에 자리한 산수유 꽃에 대한 추억은 설렘이 아니라 가슴앓이다. 떠난 사람을 그리워하는 감정이 넘실대는 까닭이다.
‘둥둥둥 둥둥둥 북소리에/마음을 빼앗긴 사람을 찾아/산수유꽃이 필 때마다 나비가 되었는데’
‘둥둥둥’ 울리는 북소리는 사람의 마음을 공연히 들뜨게 한다. 혹여 어린 시절 멀리 시골 장터에서 신나게 발길질해 울려대는 동동구리모 장사의 북소리를 들어본 이들은 그 야릇한 유혹에 공연히 가슴이 두근거리던 일을 기억할 지 모르겠다. 산수유 꽃을 피우는 봄기운은 그런 유혹을 숨기고 있다. 가슴을 설레게 하는 ‘둥둥둥 둥둥둥 북소리’에 바람이 들어 고향을 떠난 이가 있다는 얘기도 심심찮게 들었던 듯싶다. ‘산수유 꽃이 필 때마다’ ‘북소리에 마음을 빼앗긴 사람을 찾아’ 나비가 되는 심사는 필경 도지는 그리움 탓이다.
‘그 사람 알던 이도 떠나고/또 떠나고/연초록 잎이 아가의 손처럼 커가는데’
여기서 ‘그 사람’은 사랑했던, 그래서 그리움 속에 남아 있는 연인을 가리킨다. 해마다 어김없이 되 오는 봄을 따라 ‘산수유꽃이 필 때마다’는 속절없는 시간의 흐름을 말해준다. 이미 적지 않은 세월이 흘러 ‘그 사람’을 알던 이들이 하나 둘씩 세상을 떠나고 또 떠난다. 이렇듯이 무상한 세월의 흐름과는 무관하다는 듯이 ‘연초록 잎이 아가의 손처럼’ 커간다. 산수유 꽃이 피는 시간을 붙잡아맬 수는 없는 일이다. 꽃이 떨어지고 그 곁자리에 연초록 잎이 돋아나는 상황은 유장한 강물처럼 흘러가는 시간을 시사한다.
‘갸름한 얼굴 둥근 눈썹/아래로 뜬 눈 다문 입/깊이 파인 보조개가/낮게 드리운 구름 속에 나타났다가/이내 멀어지더니/다시 구름 속에 묻히는데’
여기에 묘사되는 얼굴 모양새는 ‘그 사람’을 그만큼 또렷이 기억하고 있음을 반증한다. 그러나 그 얼굴모습은 여전히 현실로 돌이킬 수 없는 사진첩 속의 얼굴이나 다름없는 과거사의 존재일 따름이다. ‘구름 속에 나타났다가’ ‘다시 구름 속에 묻히는’ 얼굴은 저 세상의 존재이다. 더불어 그 자신의 마음속에 생생하게 자리하는 그리움의 대상일 뿐이다.
‘바람이었으니 어디고 머물 자리도 없을건데’
‘바람’은 어디 한 군데 안착하지 못한 채 정처 없이 흐르는 존재이다. ‘그 사람’은 다름 아닌 바람이었다. 나에게 안착하지 못하고 나로부터 떠나간 ‘그 사람’은 바람과 같은 존재이다. ‘둥둥둥 둥둥둥 북소리에 마음을 빼앗겨’ 떠나간 바람 같은 존재이니, 여전히 ‘어디고 머물 자리’도 없으리라는 것이다.
‘옛날의 편지 펴보니/‘먼 곳에는 그리움이 있어요’ 하는 한마디가/둥둥둥 둥둥둥 북소리로 울려오는데’
문득 ‘옛날의 편지를 펴보니’ 거기에는 ‘먼 곳에는 그리움이 있어요’ 라는 말이 있다. ‘그 사람’은 ‘그리움’을 찾아 떠난 것이었다. 그리고 나서 그로부터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 돌이켜 보니, ‘나’ 또한 그리움 한 자락을 붙잡고 있음을 깨닫는다. ‘둥둥둥 둥둥둥’ 울려오는 북소리의 환청 속에서 서서 지난날을 돌이켜 본다. 그리하여 ‘먼 곳에는 그리움이 있어요’ 라며 떠난 이가 그랬듯이 산수유 꽃을 보면서 ‘나’ 또한 ‘그리움’에 설레는 것이다.
‘둥둥둥 둥둥둥’ 북소리는 산수유 꽃과 더불어 떠난 이에 대한 그리움을 샘솟게 하는 기억의 장치다. ‘둥둥둥’ 북소리와 산수유 꽃은 현실적으로 서로 아무런 연관성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떠난 사람’의 이미지와 연관성을 가진다. ‘둥둥둥’ 북소리가 울릴 때 산수유 꽃이 피었기 때문이다. 산수유 꽃은 ‘둥둥둥’ 울리는 ‘북소리’처럼 젊은 가슴을 설레게 만드는 봄바람, 즉 봄의 유혹이다. 그런 유혹을 견디지 못하고 ‘둥둥둥 둥둥둥’ 울리는 북소리에 때맞춰 내쳐 떠난 사람을 그리워하고 있다.
이 시에서 ‘둥둥둥 둥둥둥’ 울리는 북소리는 묘한 여운을 가진다. 봄날의 들뜬 마음, 즉 봄바람을 일으키는 유혹의 소리로 상징되면서, 한편으로 봄소식을 멀리 멀리 실어보내는 전문이 되는 것이다. 애달픈 이별의 의식을 보고 있는 듯, 아름답고도 서러운 감정이 밀려들게 하는 시이다. 어쩌면 이날 이후 어디서고 ‘둥둥둥 둥둥둥’ 북소리가 울리면 이 시를 떠올리게 될지 모른다. (신항섭: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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