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미술 현장

현대미술현장 (12) - 박미숙

펜보이 2010. 4. 24. 10:15

 

 

 

박미숙 작품전

 

실제와 조형의 기묘한 동거

 

신항섭(미술평론가)

 

현대회화는 그 표현영역이 무한히 넓다. 이래서는 안 된다는 금기사항이 없는 절대자유를 구가하고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러다보니 놀랍게도 아이디어의 경연장이 돼버린 느낌이다. 소묘로부터 출발하는 전통적인 회화개념으로 볼 때 과연 이것도 그림일 수 있을까싶으리만치 기발한 아이디어가 속출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의적인 발상을 중시하는 현대회화는 제어할 수 없을 만큼 빠르게 증식하고 있다.

박미숙의 최근 작업은 현대적인 조형개념을 적용하고 있으나, 그 조형적인 속성은 전통회화의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사진을 이용하는 작업임에도 회화적인 이미지가 강하기에 그렇다. 회색을 비롯하여 갈색, 연두색, 오렌지색, 청색 등 단색조의 색채이미지와 검은색 선으로 점철하는 형태는 간결한 소묘작업을 연상시킬 정도이다. 더구나 형태를 만드는 검정색 선은 사진과의 연관성을 찾아보기 힘들 만큼 회화적인 이미지에 근접하고 있다.

 

 

컴퓨터 작업을 통해 사진의 세부적인 이미지를 증발시키고 그 윤곽선만을 남기는 일련의 작업과정에서 회화적인 이미지에 가깝게 변환하는 것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형태를 지지하는 선은 사진의 결과물일 뿐, 손에 의한 직접적인 형태묘사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작품에 나타나는 형상은 어디까지나 사진의 흔적일 따름이다. 그렇지만 그 최종적인 이미지로서의 선은 소묘에 근접하는 특징을 보여준다. 그러기에 사진이면서도 소묘작업과 유사한 시각적인 이미지 및 정서가 담길 수 있는 것이리라.

그는 사진을 이용하면서도 기계적인 이미지를 소거하기 위해 화면에 질감을 부여한다. 즉 모래와 미디엄을 혼합하여 캔버스 위에 바르는 방식으로 두터운 질감을 만들어낸다. 그 위에 사진의 이미지를 앉힌 뒤 단색조의 간결한 채색기법으로 마무리한다. 이와 같은 일련의 과정을 거쳐 만들어지는 질감은 차가운 사진의 이미지를 완화시키면서 붓질과 같은 시각적인 효과를 얻는다. 사진을 이용하는 작업인데도 질감으로 인해 회화적인 표현기법으로 혼동하게 되는 것이다.

 

 

질감표현은 사진의 이미지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이면서 동시에 추상적인 공간을 만들어내고 있다. 붓 또는 나이프의 움직임에 따른 다양한 표정은 내면세계의 표출이라고 할 수 있다. 신체적인 힘을 역력히 드러내는 질감의 표정은 정적인 사진의 이미지를 동적으로 바꾸어 놓는다. 신체적인 힘이 개입함으로써 회화적인 성향으로 탈바꿈하는 것이다. 실제로 신체적인 힘을 반영하는 다양한 표정의 질감은 사진이 가지고 있는 경직된 이미지를 순화시킨다. 단순히 현실의 반영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미의식 및 미적인 감정세계를 투영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이렇듯이 그의 사진작업은 회화적인 이미지가 강해 손으로 묘사한 듯싶은 인상이다. 실루엣 형식의 작업방식으로 인해 소묘적인 성향을 드러내는 까닭이다. 명암이 뚜렷한 조그만 사진을 크게 확대했을 때 세부가 거칠어지는 상황과 유사하다. 더구나 실루엣 형식을 취함으로써 아련히 멀어져간 옛 시절의 정서를 불러들인다. 형태가 선명히 드러나지 않는 가운데 추억의 단상과 같은 이미지가 어렴프시 드러나는 형국이어서 그렇다. 거기에서 사진이 포착한 구체적인 형상을 찾아내려는 일은 부질없다. 실제의 상황을 가감 없이 반영하는 사진을 이용한다지만, 컴퓨터작업을 통해 사실성을 현저히 감소시킴으로써 사실적인 이미지는 간신히 그 뼈대만을 남기고 있을 따름이다.

 

 

그의 작업은 대체로 두 가지 사진을 하나로 연결하는 수법을 구사한다. 다시 말해 두 개의 전혀 다른 풍경을 병렬하여 하나의 사진처럼 보이도록 한다. 실루엣 형식의 이미지이기에 두 가지 풍경이 하나로 조합되었다는 사실을 눈치 채기 쉽지 않다. 단순히 하나의 풍경사진을 보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그는 여기에서 서로 다른 사진, 즉 서로 관계없는 사진을 병렬하여 통일된 이미지를 이끌어낸다. 즉, 과거와 현재, 헌것과 새것, 강남과 강북, 젊은이와 노인 등 서로 상반되는 상황을 대비시켜 시간 및 공간의 차이를 하나의 통일된 이미지로 관철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이란 이처럼 상반되는 상황이 서로 격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공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려는 것인지 모른다. 지나간 시간 및 공간일지라도 현실로부터 절연되어 있지 않고 연속적이라는 뜻이다. 고층빌딩으로 넘치는 대도시의 풍경 이면에서 아직도 달동네가 존재하듯이, 그림 속의 풍경은 지난 과거의 한 장면 같지만 실제로는 우리가 미처 지각하지 못하는 현실일 수도 있는 것이다. 이렇듯이 그의 작업은 시간과 공간이 명확치 않은 모호한 상황을 연출한다. 그로부터 복원해내는 시간 및 공간적인 이미지는 감상자 개개인의 경험과 지식의 범위에 국한할 수밖에 없다. 누구나 공유할 수 있는 현실적인 풍경으로부터 멀지 않은 까닭이다.

 

 

그의 작업을 통해 우리들이 잊고 있는 시간 및 공간을 재인식하는 계기를 맞이한다. 분주한 일상에 매몰돼 자신 이외의 주변을 의식하지 못하는 현대인의 삶을 지적하려는 것인지 모른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그의 작품을 보면서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여행을 하는 기분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형태가 명확치 않음으로써 상상의 공간이 일상적인 시계 너머로 확장될 수 있는 까닭이다. 그 상상의 공간은 추억과 결부되어 아련한 그리움을 불러일으킨다. 지나간 시간의 파편, 그 조각들을 조합하여 아름다운 한 폭의 풍경을 복원하게 되는 것이다.

지나간 시간에 대한 반추는 메마른 현대사회에서 자칫 상실하기 쉬운 아름다운 추억을 되살리는 동기가 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기계적이고 획일화된 도회지의 삶에 찌든 현대인의 마음의 상처를 달래주는 치유의 공간이 될 수 있다. 거기에는 감상자의 경험 또는 추억과 결부될 수 있는 상상의 여백이 자리한다. 비록 감상자와는 아무런 연관성이 없는 풍경일지언정, 선명치 않은 모호한 이미지를 통해 누구나 개인적인 추억의 공간과 만날 수 있는 것이다.

 

 

선명치 않은 것, 불완전한 이미지는 오히려 조형적인 상상의 여지가 크다. 다시 말해 개개인의 경험이나 추억의 편린을 복원하는 조형적인 상상의 공간이 되는 것이다. 검은 실루엣 형식의 불확실한 형태는 감상자의 참여의지를 높여준다. 형태가 선명히 보이지 않기에 시각적인 이해 또한 쉽지 않다. 그러기에 역설적으로 실루엣에 가려진 사실적인 형태 및 의미를 찾아내려는 의지가 발동하게 된다. 결과적으로는 이로 인해 눈으로 인지되는 그 이면의 세계에 도달하려는 욕망을 부추기게 되는 것이다.

사진의 힘은 사실을 전달하는데 있다. 가공하지 않은 냉철한 카메라의 시각으로 포착한 현실은 진실의 기록이다. 그는 그 진실의 기록에다 조형적인 해석을 덧붙여 실제와 조형세계를 구분하기 애매한 그 경계선상의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그 경계선상에 서 있는 이미지는 사실적인가 하면 한편으로는 몽환적인 분위기를 지닌다. 실제의 이미지가 남아 있기는 해도 사실성이 약화됨으로써 비현실적인 공간, 즉 회화적인 공간으로 진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회화적인 공간에서 우리는 작가의 의도를 뛰어넘는 자유로운 상상의 공간을 유영하게 된다. 이는 닫힌 미의식 및 감정을 열어주는 조형의 마술이다.

 

 

<박미숙전은 2010년 4월28일부터 5월4일까지 서울 인사동 갤러리라메르 (02-730-5454)에서 열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