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오 이야기

오디오이야기(22) - 한국 하이엔드오디오 출발, '사라지다'

펜보이 2009. 12. 27. 12:51

한국 하이엔드오디오의 출발, ‘사라지다’

 

신항섭(미술평론가) 

 

하이엔드 오디오시장에서 한국은 세계적인 오디오메이커들이 생산해낸 고가품이 거침없이 팔려나가는 중요한 소비처였다. 적어도 IMF체제하에 들어간 몇 년간과 미국 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세계경제가 크게 위축된 최근의 상황을 제외하고는 세계적인 메이커가 각축을 벌이는 몇 안 되는 매력적인 하이엔드오디오시장이었다. 그러나 IMF와 함께 하향곡선을 긋기 시작한 한국의 하이엔드오디오시장은 당분간은 이전의 상황으로 회복하기는 힘들다는 전망이다. 해마다 열리는 하이엔드오디오시장의 바로메타라고 할 수 있는 아이어쇼는 오디오시장의 현황을 그대로 반영한다. 참가업체 및 신제품 숫자가 크게 줄어들면서 아이어쇼 자체가 시들해지는 분위기가 수년째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소비가 크게 위축되는 시장 분위기와는 달리 하이엔드오디오의 가격은 급격히 상승하는 이변이 일어나고 있다. 소비가 줄어드는데 가격은 치솟고 있는 역설적인 현상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이는 어차피 하이엔드오디오는 가진 자들의 소유품목이니 불황에서는 되레 가격을 높임으로써 어려움을 타개한다는 고육지책의 마케팅 전략이 아닌가싶다.

이런 힘겨운 시장상황이야말로 한국 하이엔드오디오 메이커에게는 오히려 기회가 아닌가싶기도 하다. 그 동안 한국으로서는 고가의 하이엔드오디오의 변방으로만 머물 수밖에 없는 형편이었다. 그러나 최근 소수의 국내메이커들은 내수시장에서 벗어나 세계시장을 겨냥하기 시작했다. 품질향상을 통해 해외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다만 디자인과 마케팅에서는 초보적인 단계에 있는 셈이어서 세계적인 메이커들과 경쟁하기까지에는 적지 않은 시간과 투자가 필요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단 하이엔드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기본적인 조건을 갖추었다는 사실만은 간과할 수 없는 일이다.

국내 메이커 가운데 여러 면에서 하이엔드오디오의 요건에 합당한 제품라인을 갖춘 곳은 사운드포럼이다. 특히 최근 출시한 ‘사라지다’ 프리 및 파워앰프는 그 동안 문제점으로 지적돼온 디자인과 마감 문제까지도 해결, 명실상부한 하이엔드 제품으로서의 품격을 갖추었다고 평가된다. 돌이켜 보면 사운드포럼이 하이엔드오디오 메이커를 지향하면서 스피커를 비롯하여 앰프와 소스기기를 생산하는 일괄적인 시스템을 갖추어 나가기까지 하이엔드오디오는 그저 선진국들의 얘기로나 들렸다. 물론 사운드포럼 이전에 에이프릴뮤직은 중저가 모델로 세계시장에서 나름대로 이미지를 구축해왔고, 또 비록 개척하는 단계라고는 하지만 지속적으로 제품을 판매함으로써 세계 오디오시장에 한국의 존재를 알리는데 한 몫을 담당하고 있다.

이에 반해 사운드포럼은 세계시장에서 아직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둔 것은 아니지만, 최근에 비로소 하이엔드오디오 입국으로서 손색없는 제품 라인을 구축하고 있다. 따라서 한국자동차가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 모든 예상을 거부한 채 세계시장에서 급성장하고 있는 현실을 떠올리게 하는 것도 우연은 아니다. 다시 말해 이제 사운드포럼으로서는 오히려 세계적인 명성의 하인엔드 메이커들이 주춤거리고 있는 틈을 타 세계시장에 본격적으로 문을 두드릴 수 있는 기회를 맞이하고 있는지 모른다.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2009 CES 쇼’에 참가한 것도 이와 같은 자신감의 일환이었으리라. 마케팅과 디자인의 중요성을 실감하고 돌아온 이후 제품 라인에 대한 전면적인 검토를 통해 문제해결을 위해 노력해 왔고, 그 결실이 ‘사라지다’ 프리 및 파워앰프로 구체화된 것이다.

사운드포럼은 스피커 부문에서는 이미 최고의 유닛으로 평가받는 ‘아큐톤’과 ‘스카닝’을 채용하면서 세계적인 메이커들 제품에 비견할 수 있는 모델을 지속적으로 발표해왔다. 이 과정에서 축적된 기술과 제품 개발 능력은 가히 세계적인 수준에 올라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들 유닛 메이커는 신제품이 나오면 성능 테스트를 위해 맨 먼저 사운드포럼에 보낼 정도가 됐다. 사운드포럼 고유의 디자인에 대한 문제는 여전히 숙제로 남아 있을지언정 음질 및 가격 경쟁력에서는 결코 뒤지지 않는다. 최근에는 미국시장 진출 가능성을 적극적으로 타진하고 있어 조만간 기대하는 성과가 나타날 것으로 기대한다.

필자는 최근 아끼던 아큐페이즈의 ‘A50-V’ 파워앰프를 내보내고 사운드포럼의 ‘사라지다’ 파워앰프로 교체했다. 그 이전에 아큐페이즈 ‘A50’을 듣는 과정에서 사운드포럼의 아이스파워 ‘K3’도 사용해본 일이 있는데, 아무래도 A급 앰프의 부드럽고도 온기가 느껴지는 소리를 잊지 못해 A50-V로 업그레이드해 들어왔다. 그러다가 지난 3월 인사동 토포하우스에서 열린 <그림과 음악의 유쾌한 동거> 전시회 기간 시연회를 가진 올 사운드포럼시스템 (콘트라베이스3, 사라지다 프리 및 파워, 그리고 CD-77)을 들으면서 ‘사라지다’ 프리 및 파워에 관심을 갖게 됐고, 마침내 ‘사라지다’ 파워를 들이게 된 것이다.

프리는 사운드포럼의 진공관 채용 모델인 ‘P-9'을 불만 없이 듣고 있던 터여서 ‘사라지다’ 프리앰프에 대한 미련은 없다. 시간이 지나고 여건이 되면 ‘사라지다’ 프리앰프를 사용하게 될지도 모르지만 당분간은 ‘사라지다’ 파워앰프와의 조합을 즐길 생각이다. 사실, ‘사라지다’ 파워로 교체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음에도 아큐페이즈 ‘A50-V’에 대한 미련을 거두기가 힘들었다. 우선 완성도 높은 만듦새와 특유의 고전적인 디자인 등 어디 특별히 탓할 데 없는데다 무엇보다도 순 A급 앰프의 곱고 부드러우며 따스한 소리는 개인적인 취향에 딱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라지다’가 만들어내는 극사실적인 소리를 듣고 나서 그 유혹을 떨치기 힘들었다. 더구나 이전부터 언젠가는 올 사운드포럼시스템으로 듣고 싶다는 희망도 있었기에 ‘사라지다’ 앰프가 완제품으로 나오는 시점에 맞춰 곧바로 영입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해서 소스기기를 제외한 프리와 파워 그리고 스피커까지 사운드포럼 제품으로 갖추게 되었다.

토포하우스에서 낯이 익은 터여서인지 파격적인 디자인의 ‘사라지다’ 파워앰프는 다행히 다른 기기들과 충돌을 일으키지 않았다. 그렇다고 하더라고 ‘사라지다’ 파워앰프는 기존의 하이엔드 제품들과는 전혀 다른 개념의 디자인이라고 할 수 있다. 기본적인 패널의 두께는 일반적인 하이엔드 제품과 다르게 5mm 정도로 아주 얇게 보이고(실제로는 20mm), 은색 알루미늄 판 위에 샌딩 기법으로 곱게 마감하여 차가우면서도 부드럽다는 인상이다. 그런데 패널 왼쪽 부분이 생뚱맞게 돌출해있다. 패널의 삼분의 일을 차지하는 면적의 돌출한 부분의 두께가 1cm가 넘는 정도여서 첫인상으로는 전체적으로 심각한 불균형 상태이다. 더욱 돌출한 부분은 삼분의 이에 해당하는 얇은 부분의 두 배에 해당하는 두께로서 도대체 이런 발상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의문이 들 정도이다. 한마디로 고정관념을 깬 파격의 미를 겨냥한 디자인 개념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데, 돌출한 부분이 위쪽이어서 무게 중심이란 측면에서도 가분수 형상이다.

일반적으로 오디오 패널디자인은 좌우밸런스를 중시한다. 전통적으로 오디오기기의 대다수가 대칭으로 되어 있다는 사실은 우연이 아니다. 같은 모양의 스피커를 양쪽으로 세운다는 기본적인 세팅 방식에서는 좌우밸런스를 맞추는 것이 시각적으로 안정감을 얻을 수 있는 까닭이다. 특히 스테레오 음악에서 좌우밸런스는 청각상의 이미지와도 연관성을 갖는다. 그러므로 비대칭의 오디오 패널디자인은 스테레오 음에 대한 기대를 흩뜨리는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 다시 말해 스테레오 음에 대한 기대심리가 깨지는, 시각적인 불안감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문제인 것이다. 그러기에 스테레오를 지향하는 오디오 기기에서 대칭구조는 아주 당연하고도 자연스러운 요구인 것이다. 시각적인 안정 및 심리적인 안정에 기여하는 까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라지다’는 비대칭 구조를 채택했다. 당돌하다싶을 만큼 기본적인 대칭개념을 무시한 채 강렬한 시각적인 이미지만을 겨냥하고 있는 인상이다. 여기에다가 ‘트로포스오디오’라는 영문로고 역시 상식을 벗어나는 크기이다. 돌출한 패널 부분 전체를 장악할 정도의 큰 로고의 배치는 도발적이고도 발칙하다. 음각으로 깊숙하게 처리된 로고의 표기방법도 이전의 그 어떤 오디오 기기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일이다.

여기에다 패널의 하단에는 오선지를 상징하는 다섯 개의 수평선이 음각으로 처리되어 있다. 반복적인 수평의 평행선이 윗부분의 불균형을 잡아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오선지라는 개념은 좀 유치한 발상일 수도 있으나, 그런 트집은 끼어들 여지가 없다. 어쨌거나 이처럼 상식을 깨는 전혀 엉뚱한 발상의 디자인인데도 불안정하다거나 불협화음을 일으키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파격적인 디자인에 대해 모든 마니아가 무심하거나 태평할 수는 없다. 마치 외줄을 타듯 아슬아슬한 느낌인 데도 그로 인해 심리적인 불안감이 발생할 정도는 아니다. 어느 면에서는 오히려 밋밋한 일상에서의 일탈과 같은 짜릿한 시각적인 쾌감이 느껴진다.

왼쪽의 지나치게 돌출한 부분에 대한 시각적인 부담감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것은 ‘트로포스오디오’라는 로고의 깊숙한 음각과 무관하지 않다. 패널 두께의 절반 가까이 될 성싶은 음각의 깊이는 둔탁하고 답답한 패널의 두께를 실제보다 얇다는 느낌이 들도록 한다. 다시 말해 둔탁해 보이는 돌출부분의 속이 들여다보이는 듯싶은 시각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비록 상식을 벗어난 두께, 즉 비정형의 불균형한 패널 디자인임에도 깊숙한 음각의 로고로 인해 전체적인 밸런스가 유지된다는 게 신기할 정도이다.

오디오의 패널디자인은 단순한 시각적인 아름다움 및 안정감에 그치지 않고 심리적인 문제까지도 고려해야 한다는 사실을 떠나 좌우밸런스의 관례를 깨뜨린 ‘사라지다’는 사뭇 도전적인 디자인임에 틀림없다. 이런 패널디자인은 ‘사라지다’ 파워에 대한 보다 강렬한 시각적인 이미지로 작용할 소지가 크다. 다시 말해 앰프의 존재를 느끼지 못하게끔 한다는, 즉 음악을 듣는 동안 오디오 재생음악이라는 사실을 의식하지 않을 만큼 생생한 현장감을 표현한다는, ‘사라지다’ 앰프가 표방하는 음질의 이미지를 패널디자인에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음질은 어떤가. 과연 앰프의 존재 아니, 오디오 기기의 존재를 정말 사라지게 하는 걸까. 자동사인 ‘사라지다’라는 단어를 오디오 기기의 명칭으로까지 사용할 수 있을 만큼 생생한 생음악 효과를 나타내고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한마디로 ‘그렇다’이다. 눈을 감고 음악에 몰두하다보면 생생한 현장감으로 인해 오디오 재생음악을 있다는 사실을 잊을 수 있다. 지나친 과장인지 모르지만 적어도 오디오 기기를 의식하지 않고 음악을 즐길 수 있을 만큼 사실적인 묘사력이 뛰어나다. 즉 오디오가 ‘사라지고’ 없다는, 그래서 오디오의 존재를 의식하지 않은 채 음악에만 몰두할 수 있다.

이전의 파워앰프에 대한 기억은 어차피 모호한 것이어서 직접적인 비교는 의미가 없다고 할지라도 귀에 익은 아큐페이즈 ‘A50-V’ 음질을 능가하는 것만은 분명하다. ‘깨끗하고 차갑다’는 전형적인 하이엔드오디오의 성향을 그대로 보여준다. 무엇보다도 음의 새김, 즉 명료하고 입체적이면서도 사실적인 표현이 뛰어나다. 특히 피아노곡에서는 음의 새김이 보다 또렷하게 들린다. 애매하게 표현하는 일은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는 듯 음계 하나하나의 맺고 끊음이 명확하다. 모든 악기 현이 이런 식이다. 이제까지 들어본 그 어떤 시스템에서도 이 정도로 명료한 피아노 소리를 경험한 일이 없다. 따라서 대규모 편성의 관현악곡에서 그 진가는 더욱 두드러진다. 협주곡에서는 독주자와 오케스트라와의 경계가 분명하게 느껴진다. 바이올린협주곡의 경우 독주자의 존재를 명확하게 짚어준다. 한마디로 청각상의 쾌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일깨워준다.

성악곡에서도 성악가의 위치가 선명히 그려진다. 노래하는 성악가의 무대에 대한 이미지가 명료하게 떠오르는 것이다. 성악에서 발성의 또렷함은 가장 기본적인 요구사항이다. 흔한 표현으로 ‘침이 튀는 소리까지 들린다’라는 표현은 공연한 과장이 아니다. 그만큼 사실적인 표현력, 즉 해상력이 뛰어나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사라지다’ 파워앰프를 들여놓고 성악곡을 이전보다 자주 듣게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흔히 실연에 육박하는 사실적인 소리라는 것은 각 악기의 존재감을 선명히 드러내준다는 뜻이다. 소리가 엉키면, 즉 음의 분해력이 떨어지면 각 악기의 존재감이 살아나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사라지다’ 파워는 뛰어난 음의 분해력, 또는 해상력을 통해 선명한 음악적인 해석을 들려준다. 그러기에 악기의 위치를 또렷이 그려낸다. 녹음기술이 우수한 대규모 관현악곡에서 그 능력은 더욱 출중하다. 달리 표현하면 악기 소리에 군더더기가 없다. 어느 면에서는 너무 명료하여 차갑다든지 또는 메마르다고 느낄 수도 있다.

음악적인 분위기를 선호하는 빈티지파들로서는 그다지 호감을 느낄 수 없을지도 모른다. 반면에 현대적인 하이엔드 소리를 즐기는 감각파들에게는 더 이상 시비할 수 없을 만큼 깨끗하고 명료한 음악적인 표현으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그런데 반드시 차갑다는 느낌만은 아니다. 어느 면에서는 섬세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부드럽다는 느낌이다. 이러한 느낌은 소스에서부터 스피커까지 문도르프사의 실버골드 선으로 연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아무튼 깨끗하고 차가운 가운데서도 섬세하고 부드러운 음질을 들려준다.

여기에다 공간감 또한 현대 하이엔드오디오의 지향점 그 끝에 이르렀다고 해도 좋을 듯싶다. 단적으로 말해 사운드포럼이 추구하는 음질성향을 그대로 대변하고 있다. 공간적인 깊이는 더 주문할 필요가 없다. 사실적인 소리, 즉 실제의 악기 소리에 육박하는 사실성과 함께 콘서트홀을 그대로 옮겨다 놓은 듯싶은 현실적인 공간감이 느껴지는 것이다. ‘탄호이저’에 채용된 아큐톤사의 다이아몬드 트위터의 성능을 극대화시키는 공간적인 표현력에서 ‘사라지다’ 파워의 진가가 발휘된다.

특히 바이올린 소리는 무대가 좁다싶을 만큼 거침없이 뻗어나간다. 일체의 가식적인 소리를 배제한 채 쭉 뻗어나가는 바이올린 소리는 천장과 벽이 일시에 사라지는 마술을 부린다. 현실적인 공간을 훌쩍 뛰어넘는 음악적인 공간이 형성되는 것이다. 실제의 연주회장을 끌어들이는 이런 공간의 확장은 현대적인 하이엔드오디오가 추구하는 궁극적인 목표가 아닌가. 그렇다면 ‘사라지다’ 파워는 다이아몬드 트위터와 더불어 하이엔드의 궁극이 무엇인지를 실감케 하는지 모른다.

‘사라지다’는 150W 출력이다. 이런 출력으로 대형스피커를 울릴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탄호이저’의 11인치 저역을 아주 손쉽게 장악한다. 출력 150W라는 스펙과 상관없이 출력석 용량을 크게 강화한 결과가 아닌가싶다. 다시 말해 강력한 다이내믹스가 요구되는 대편성 관현악 총주에 대응하는 순간적인 전원공급능력을 강화한 것이다. 그래서인지 실효출력 150W라는 숫자를 무시해도 좋을 만큼 다이내믹스 표현에 뛰어나다. 어쩌면 크기는 작으면서도 강력한 힘을 가진 파워가 이상적인지 모른다. 그런 점에서 볼 때 <린>사에서 스위칭 파워방식을 일관성 있게 추구하고 있는데 대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듯싶다. 스위칭파워의 장점에 어디에 있는지를 ‘사라지다’ 파워를 통해 비로소 실감하고 있는 까닭이다.

‘사라지다’는 스위칭 파워를 채택했음에도 무신호시 고음역에서 들리는 화이트노이즈가 무시해도 좋을 만큼 아주 미약하다. 스피커에 귀를 대고 들어야만 감지할 수 있을 정도인 것이다. 따라서 화이트노이즈나 험으로 인한 음악적인 손실은 거의 없다고 해도 좋다. 그래서일까. 암소음을 잡아내는 능력도 뛰어나다. 실황음반의 경우 연주자의 기척이나 관객들의 소음까지도 놓치지 않는다. 눈을 감고 음악에 집중하다보면 음악회가 열리는 그 현장에 실제로 참여하고 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생생한 공기감을 전달한다. 이런 정도의 미세한 표현력은 소스의 정보를 남김없이 읽어내는 광대역의 해상력에 기인한다. 다이아몬드 트위터의 성능을 최대한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광대역의 섬세한 해상력을 필수적이다. 그러고 보면 ‘사라지다’ 파워는 하이엔드오디오의 이상을 실현하는데 가장 적합한 형태의 현대적인 앰프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난로를 들여다 놓은 것 같은 파워앰프의 발열에 신경이 쓰이는 마니아에게 '사라지다' 파워는 낭보이다. 발열로 인해 여름에는 아예 음악듣는 시간을 줄여야 했던 필자의 입장에서는 그런 근심에서 벗어났다는 사실이 그저 고맙기만 하다. '사라지다' 파워를 1시간 이상 틀어놓아도 그저 따뜻하다는 정도이다.  

‘사라지다’는 무게가 20Kg에 불과하다. 그러기에 디스플레이에 용이하다. 대형스피커를 울릴 정도의 트랜스방식을 채택한 파워앰프의 엄청난 무게에 비하면 그야말로 장난감 같다는 기분이다. 파워앰프 몸체 크기(460x170x485cm)가 프리앰프 정도이니 대형스피커를 울리는 파워앰프치고는 작다고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파워앰프의 무지막지한 무게의 압박에서 벗어났다는 사실은 결코 가볍지 않은 보너스인 셈이다. (신항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