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의 길

명작의 길 (37) - 엄의숙

펜보이 2009. 5. 22. 00:31

  

 

 

엄의숙 작품세계


빛과 색채로 치장한 화려한 꽃의 외출


신항섭(미술평론가)


꽃을 소재로 한 그림과 마주했을 때 누구나 형태미보다는 색채의 아름다움에 먼저 반응하게 된다. 즉, 그림과 마주하는 순간 화사한 색채이미지에 시선을 빼앗기는 것은 자연스럽다. 따라서 꽃을 소재로 하는 경우 일차적으로 색채의 아름다움을 부각시킬 수 있는 방법을 탐색하는 것도 이와 같은 시각적인 효과 때문이다. 선명하고 투명한 꽃의 아름다움은 선도 높은 색채와 빛이 만들어낸 조형의 마술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렇다. 투명도가 높은 꽃 그림은 마음까지 맑게 순화시킨다.

엄의숙의 꽃 그림이 그렇다. 그의 수채화와 마주하는 순간 순도 높은 화사한 색깔에 속수무책 마음을 빼앗기고 만다. 꽃잎을 형성하는 물성, 즉 꽃의 존재감조차 잊은 채 단지 순수한 색채가 뿜어내는 눈부신 광휘에 휘말리는 것이다. 명도와 채도를 극단적으로 밀어올림으로써 색채는 꽃의 이름을 빌어 화려하게 발화한다. 그의 그림을 보면서 새삼 꽃잎은 색채의 정령이 만들어낸 환상이라는 사실을 실감하게 된다. 색채의 정령이 종이 위에서 다시 한 번 영속적인 찬란한 생애를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그의 그림에는 그런 색채의 환상이 존재한다.

 

 

시선을 사로잡는 그의 꽃그림에서 발산하는 색채의 아름다움은 오직 빛의 현현일 따름이다. 인상파 화가들이 그림에서 처음으로 태양의 존재성을 실감케 했듯이 그의 그림 또한 눈부신 꽃의 색깔을 통해 햇빛의 존재감을 일깨워준다. 그의 꽃 그림은 빛이 연출하는 색채의 요술임을 확실하게 인식시켜 주는 것이다. 직진하는 아침 햇살은 꽃잎의 투명한 속살을 남김없이 들추어내고, 그 자신은 멈출 수 없는 미적 감흥으로 물감을 풀어 응답한다. 어쩌면 그의 수채화가 물성을 초월한 순수한 색채의 이미지만을 보여주는 듯싶은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것도 우연은 아니다.

그가 소재로 취하는 꽃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보는 종류들이다. 잘 손질된 화원의 꽃을 포함하여 들꽃이나 과일나무 꽃들이 그 대상이다. 특별히 색다른 꽃도 아니다. 그런데도 그의 그림에서는 마치 다른 세상의 꽃처럼 더 밝고 아름다운 색채이미지로 태어난다. 꽃의 본래적인 형태 및 색채를 뛰어넘는, 실제보다 과장된 색채이미지로 치장하는 까닭이다. 한마디로 그는 실제의 꽃이 보여주는 색깔을 재현하는데 그치지 않고 그림으로서 가능한 환상적이고 신비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일상적으로 보는 꽃의 색깔보다 더 밝고 맑은 색채이미지는 다름 아닌 햇살이 만들어낸 요술이자 환상이다.

  

 

그의 수채화는 실내정물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아침햇살이 찾아드는 창가에 놓인 꽃과 과일 그리고 화병이나 광주리 또는 악기들을 조합하는 전형적인 정물화이다. 그런데 어떤 소재를 조합하든 어김없이 꽃이 등장한다. 물론 과일을 소재로 하는 경우는 예외지만 대다수의 작품에서 꽃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그가 꽃을 선호하는 것은 순전히 아름다운 색깔 때문이다. 단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맑아지는 꽃의 정화기능을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그의 꽃 그림은 유난히 맑고 밝고 현란한 색채이미지로 출렁인다. 다시 말해 투명도 높은 수채화의 장점을 극대화시킨 결과인 것이다. 

꽃은 아침햇살의 유혹에 흔들린다. 그 또한 아침햇살에 흔들리는 꽃의 이미지에 정신이 혼미해지는 듯싶은 미적감흥에 사로잡힌다. 그러기에 아침햇살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선염한 꽃의 색채를 생기 넘치는 발랄한 이미지로 그려내는 것이다. 꽃잎을 투과하는 강렬한 햇살은 그로 하여금 농염한 색채의 환상에 빠지도록 유도한다. 그러고 보면 선도 높은 색채이미지는 아침햇살을 머금고 토해내는 꽃의 속살인지 모른다. 이렇듯이 맑고 투명한 색채이미지는 수채라는 재료가 가지고 있는 독특한 표현력 덕분이다. 

  

 

하지만 직진하는 햇살이 수직으로 꽂히는 부분에서는 색깔이 증발하고 만다. 빛이 너무 강렬한 나머지 빛의 산란으로 인해 색깔이 사라지는 착시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처럼 강한 아침햇살의 과잉조차 그대로 수용한다. 색채의 명도를 높임으로써 생생한 햇살의 존재를 감지할 수 있는 까닭이다. 아침햇살은 생명의 환희이다. 그는 아름다운 색채이미지에 빛이 전하는 생명의 환희를 담으려는 것이다. 그러나 빛의 이면에는 상대적으로 짙은 음영, 즉 그림자가 형성된다. 실제의 꽃 색깔보다도 한층 농염하면서도 밝은 색채이미지는 다름 아닌 빛과 음영의 극적인 대비가 만들어낸 환상인 것이다.     

최근 작업에서 드러난 새로운 표현방법의 하나는 배경을 어둡게 처리하는데 있다. 현실과 다른 인위적인 표현이다. 마치 어두운 연극무대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배우처럼 소재를 에워싸고 있는 주변이 어두워짐으로써 배우의 존재가 극명하게 드러난다. 이처럼 배경을 어둡게 처리함으로써 꽃이나 과일의 색채이미지는 더욱 선명하게 부각된다. 이는 자연광의 영향을 배제한 인위적인 설정으로써, 특히 꽃과 과일을 소재로 하는 작업에서 극적인 명암대비 효과를 나타낸다.

 

                             

  

아침햇살에 빛나는 꽃과 어두운 배경은 부자연스러운 설정이다. 그럼에도 실제의 작품에서는 오히려 꽃의 빛깔을 더욱 선명하고 농도 짙게 보이도록 하는 시각적인 효과를 얻고 있다. 이는 자유롭고 창의적인 조형적인 사고의 산물이다. 꽃의 색채이미지를 강조하기 위해 일상적인 시각, 또는 고정관념을 타파함으로써 얻게 된 회화적인 환상이자 신비인 것이다. 그의 그림에서 꽃의 이미지가 실제보다 더 밝고 선염하게 보이는 것은 극적인 명암대비에 기인한다. 비현실성을 끌어들임으로써 되레 사실성을 강화시키는, 순전히 과장된 조형어법의 소산이다.

이로써 알 수 있듯이 그의 작업은 빛과 음영의 극단적인 대비를 효과적으로 이용한다. 빛은 어둠에 잠긴 채 꽃으로 변신하려는 색채의 순수한 열망을 외면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어둠 속에서 발산하는 순색의 아름다움이 어떻게 꽃으로 화신하는가를 숨김없이 보여준다. 어둠을 불러들여 빛의 존재를 더욱 극명하게 부각시킴으로써 꽃을 통해 색채의 열망을 실현토록 하는 것이다. 꽃에 스며드는 빛의 존재는 색채의 순도를 극단적으로 밀어 올린다. 그리하여 마침내 색채의 아름다움 그 존재성을 입증시킨다.

 

                             

 

어둠과 빛과 색채의 관계를 통해 연출되는 그의 작품은 현실을 초월한 이상적인 조형세계일 따름이다. 꽃과 과일을 소재로 하는 것은 선도 높은 원색의 아름다움을 통해 이상적인 색채이미지를 구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가 그리고자 하는 것은 꽃의 형태미가 아니라 빛에 의해 깨어나는 색채의 아름다움에 있다. 어쩌면 극사실적인 묘사를 지양, 형태를 부분적으로 생략하거나 간결하게 또는 추상적으로 표현하는 것도 형태보다는 색채이미지를 중시하기 때문이다. 

꽃들은 부분적으로 생략하거나 간결하게 묘사된다. 뿐만 아니라 어두운 배경은 자유로운 추상적인 이미지로 출렁인다. 수채화의 번짐 기법을 활용하는 추상적인 이미지는 마치 유동하는 듯싶은 유기적인 표현으로 점철한다. 붓 자국을 극도로 절제함으로써 물과 물감의 상화작용에 따른 자율적인 표현력을 한껏 부추기는 것이다. 어쩌면 그 형태가 보이지 않는 유기체의 생동하는 이미지를 흉내고 있는지 모른다. 이런 표현은 예민한 미적 감수성과 무관하지 않다.     

 

                             

  

형태묘사와 관련해 사실적인 묘사를 약화시키고도 오히려 더욱 생생한 사실성을 느낄 수 있는 것도 실제보다 과장된 색채이미지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형태의 존재감을 약화시키고도 색채의 아름다움을 부각시키는 것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닌 것이다. 실제로 소재의 형태를 허물거나 간결하게 표현함에도 불구하고 흡인력을 갖는 밝고 아름다운 색채이미지에 사로잡혀 실제의 꽃을 보고 있는 듯싶은 착각에 빠진다.

최근 작업 가운데 서로 다른 여러 종류의 꽃들이 한데 어우러지는, 화환형식이 인상적이다. 색깔과 모양이 다른 꽃들의 합주인 셈인데, 순색의 물감을 뿌려 놓은 듯 현란한 색채이미지가 눈이 부실 지경이다. 화면을 빼곡하게 채우는 꽃들의 화음은 빛과 색채가 만들어내는 수채화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뽐낸다. 아침햇살을 흠뻑 머금은 꽃들은 마치 빛의 분수처럼 또는 색채의 분수처럼 어둠을 배경으로 눈부시게 발화하는 것이다. 이런 꽃의 조합, 이런 구성은 새삼 삶의  환희를 일깨워준다.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운 곳인지를 자각케 해 주는 것이다. 

 

                             

 

 

<엄의숙 전은 2009년 6월12일부터 16일까지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는 KACF전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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