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의 길

명작의 길 (32) - 박정민

펜보이 2008. 12. 12. 23:11

 

박정민 작품전

 

꿈, 사랑, 낭만, 행복, 평화를 품에 안은 나무

 

신항섭(미술평론가)

 

그림은 화가 개인의 이상적인 인생관을 표현하는 공간이다. 물론 표현양식에 따라 그 접근방식에는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인생에 대한 개인적인 관점의 표출이라고 할 수 있다. 인생을 낙원으로 여기는 화가의 경우 그러한 감정이 그대로 그림에 담기기 마련이다. 따라서 낙원을 연상케 하는 아름다운 그림을 감상하게 되면 화가가 그림 속의 정서에 감염되기 십상이다. 그러한 감정이 오래 지속되지 않을지라도 그림과 마주하고 있는 순간만큼은 상큼한 감정의 샤워를 맛보게 되는 것이다.

박정민은 본격적으로 그림을 시작한 이래 오늘까지 일관된 제재 및 조형언어로 작업해 왔다. 그의 그림에는 언제나처럼 가족의 일상적인 삶의 모습이 소박한 이미지로 묘사되고 있다. 따스한 공기가 피부에 와 닿을 듯싶은 정겨운 가족이 구성원인 가정의 일상사가 담담하게 펼쳐지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현실감이 농후한 구체적인 서술방식은 아니다. 오히려 현실성이 결여된 이상적인 정경이라고도 할 수 있는지 모른다.

 

 

실내공간으로 압축되는 가족애가 물씬 풍기는 단란한 가정의 이미지를 보여주는가 하면, 바깥나들이에서 일어나는 에피소드가 그림의 내용을 이루기도 한다. 그러고 보면 단순히 보이는 사실의 재현이라는 방식에서 벗어나 이야기 그림으로서의 성격이 짙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어느 그림에서나 짤막한 엽편소설 같은 이야기가 전개된다. 가족을 중심에 두고 그 주변 정경이나 풍경이 따스한 정서로 결속되는 이야기체 형식의 그림이다. 더불어 조금은 어눌해 보이는 형태미, 즉 아동화와 흡사한 조형언어로 인해 친근한 이미지로 다가온다.

세부묘사를 지양, 간결하게 형태를 단순화하고 압축하는 조형어법으로 보아서는 소박파적인 성향으로 분류할 수 있다. 그 자신의 일상사에 관련된 현실적인 이야기임직하면서도 평면적인 이미지로 재해석함으로써 사실성은 약화된다. 더구나 물상의 형태는 생략하거나 단순하게 요약하고 함축함으로써 아동화를 보는 듯싶다. 이와 같은 형태미는 현실감을 차단, 비현실적인 감정을 유발한다. 다시 말해 현실적인 감각을 무디게 만든다. 대신에 달콤하고 낭만적이며, 때로는 이국적인 정서에 젖어들도록 유도한다.

 

 

하지만 그 형태는 언제나 명료하다. 애매하거나 모호한 이미지가 존재하지 않는다. 마치 색종이를 오려 붙이는 콜라주처럼 윤곽선이 뚜렷하여 시각적인 인상이 명쾌하다. 이는 단색조의 평면적인 이미지의 구성이라는 조형어법과 무관하지 않다. 물론 초기에는 자유롭고도 유려한 필치의 회화적인 선묘형식의 작업을 했다. 비록 구체적인 묘사를 지양했기에 형태미는 어눌했을지언정 유려한 선묘에서 느끼는 시각적인 쾌감이 적지 않았다. 그러다가 점차 평면적인 이미지로 이행함에 따라 자유로운 선에 의한 형태묘사의 필요성이 적어지게 된다. 이후 그의 작업은 평면성이 강조되는 색면 조합과 같은 구성적인 이미지로 정착을 한다.

어쩌면 그의 작품에서 느끼는 비현실적인 감각은 현실의 색깔을 무시한 평면적인 색채이미지에 기인하는지 모른다. 붉은 색깔의 하늘이 있는가 하면, 갈색이나 파란색의 이파리가 있고 검은색의 줄기도 있다. 이러한 색채이미지는 동화적이거나 우의적인 내용에 합당하다. 한마디로 그의 작품이 추구하는 성향을 반영하고 있는 색채이미지인 것이다. 비현실적인 색채감각은 세상의 만물이 화합하여 차별과 다툼이 없는 공존공영의 원칙이 구현되는 이상적인 세계관을 지향하는 것이다.

 

 

최근에는 이와 같은 평면적인 구성 방식이 더욱 강화되는 양상이다. 최근 작업에서 드러나는 조형적인 특징의 하나는 나무를 중심적인 소재로 채택하고 있다는 점이다. 나무가 소재로 등장하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이전의 작품에서도 사람과 함께 자주 등장해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무의 존재를 보다 뚜렷이 부각시키면서 그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이끌어나간다는 설정이 새롭다. 즉, 나무에 이전과 다른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조형언어 및 언어 또한 거기에 응답한다.

나무는 인간에게는 유난히 친숙한 존재이다. 아마도 인간처럼 직립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온갖 풍상을 겪으면서도 의연하게 한 곳을 지키며 천년이 넘는 수명을 지속하는 나무는 인간에게는 영원한 동경의 대상일 수 있다. 어디 그뿐인가. 갖가지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 인간 및 동물에게 먹이를 제공하는, 그 한량없는 나눔의 모습을 통해 실천적인 철학자상을 연상하는 것은 결코 사유의 비약이 아니다. 뿐만 아니라 한 여름에는 무성한 잎으로 그늘을 만들어주는 친숙한 존재감이야말로 인간이 나무에 보내는 애정의 근거인 것이다.

 

 

나무를 중심에 두는 최근의 작품을 보면 이와 같은 나무의 존재 및 가치를 더욱 선명하게 부각시키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무엇보다도 조형언어 및 어법에서 몇 가지 이전과 다른 해석이 돋보인다. 간명한 윤곽선과 명료한 평면적인 이미지로 통일된 나무의 형태가 인상적이다. 줄기와 가지와 잎으로 이루어지는 나무의 형태에서 줄기와 잎만으로 요약함으로써 더는 생략하거나 단순화할 수 없는 최소한의 형태미로 압축하고 있다. 따라서 그 나무의 형태는 색종이를 오려 붙인 듯 단순하고 간결하다. 하늘을 배경으로 서 있는 나무가 있는가 하면, 산 속에 있는 나무도 있고, 들판에서 바람에 기우는 나무도 있다.

하지만 간결한 나무의 외형과 달리 둥근 원형으로 압축한 평면적인 이미지의 무성한 이파리 가운데는 활짝 핀 꽃을 비롯하여 나비, 새, 잠자리, 구름, 새집 따위로 풍성하다. 이들 소재들이 지어내는 아름다운 화음은 교향악을 연상케 한다. 단색 평면 위에 자리하는 이들 이미지들로 인해 나무는 아이들 놀이터처럼 명랑한 소란스러움으로 넘친다. 활짝 웃는 꽃들 사이에 자리하는 나비, 새, 구름, 잠자리, 새집의 이미지는 화합과 조화와 통일을 상징한다. 이들 소재를 거뜬히 품에 안는 나무의 의연함이야말로 성자와 다름없는 모습이다.

 

 

이렇듯이 풍성한 나무에 기대어 사랑을 나누거나 혹은 기대어 앉거나 기대어 서 있는 사람의 모습은 한 결 같이 편안해 보인다. 나무 아래에는 사람은 물론 옹기종기 모여 있는 집들과 풀 뜯는 말, 강아지 의자 자전거 있고 집도 있다. 이들 물상은 너무나 큰 존재감을 드러내는 나무에 비해 보잘것없이 작게 그려지고 있다. 나무가 얼마나 큰 의미를 지닌 존재인지를 상징하는 반어적인 표현수법인 것이다.

그는 최근 작품에서 나무에 피어나는 꽃에 입체적인 조형기법을 도입하고 있다. 다시 말해 꽃잎 하나하나를 부조형식으로 도톰하게 돋움으로써 꽃잎의 실체감을 강조하는 것이다. 하얀 물감을 꽃잎 모양에 따라 도톰하게 쌓아올린 뒤 그 위에 채색을 덧입힌다. 그러기에 화면에서 꽃잎의 존재감이 도드라져 보인다. 평면적인 이미지 위에 부조 형식의 입체감이 부여됨으로써 화면은 생기를 얻는다.

손가락을 꼼지락거려 공작의 즐거움을 함께 하는 그의 조형감각은 평면공간을 뛰어넘는 확장된 조형세계를 모색하려는 시도로 이해할 수 있다. 이는 확실히 화면에 새로운 긴장감을 불러오면서 또 다른 시각적인 즐거움을 제공한다. 꽃이 실제의 꽃처럼 보이기 위한 의도를 내포하고 있다고는 할 수 없다. 단지 꽃에 새로운 형태의 생명력을 부여함으로써 그림에 생기발랄하고 명랑한 기운을 깃들이게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어느 경우에나 그의 그림은 우리에게 아름다움 꿈과 사랑과 낭만과 행복의 의미를 전한다. 다툼이 없는 평화로운 정경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표현은 그 자신의 인생관에서 비롯된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이 삶의 공간을 낙원으로 여기는 낙천적인 사고 및 삶의 자세가 만들어낼 수 있는 이상적인 세계인 것이다.

 

"박정민초대전"은 2008년12월17일부터 2009년1월6일까지 서울 코엑스 인터콘티넨탈호텔 지하 '갤러리미소(02-564-2076)에서 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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